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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아버지처럼만 살아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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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팔순 잔치에서 아들 성빈씨와 악수한 후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영일만 신화’의 주인공으로 추앙 받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본인의 삶을 스스로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포스코 회장직 말고도 평생 장군, 의원, 당 대표·총재, 국무총리 등 굵직한 직함을 가졌다. 대통령 빼고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최고의 요직을 대부분 거친 셈이다.

그것은 그의 능력이 출중했던 게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시대적 상황이 그를 부른 탓도 있을 것이다. 잘 정비된 국가였다면 한 인생이 이렇게 다양한, 그것도 대부분을 리더로 살긴 힘들었을 것이다.

박 명예회장은 파란만장한 격동의 한복판을 헤쳐왔다. 일본에서 보낸 어려운 학창 시절, 통밀밥을 먹고 다녔던 육군사관학교, 전쟁 이후 군 장교 생활, 모랫바람 맞으며 제철소를 키웠던 25년, 92년 대권 도전의 좌절과 정치적 망명까지…. 참으로 굴곡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본인의 인생에 후한 점수를 매겼다.

2001년 폐의 물혹을 제거하는 큰 수술 후 고비를 넘긴 박 명예회장은 병원을 찾은 외아들 성빈(42)씨에게 “아버지처럼만 살아라. 난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는 가장 소중한 아들에게 그대로 물려줘도 될 정도로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 것이다. 어느 아버지가 그렇게 당당하게 아들에게 자신의 삶을 얘기할 수 있을까.

지난 8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박 명예회장의 팔순 잔치에서 기자와 만난 성빈씨는 ‘아버지와 얽힌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을 묻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다 병원에서의 이 장면을 떠올렸다. 이날 팔순 잔치에는 정·관·재계 인사 400여 명이 참석해 산수(傘壽)를 축하했다.

성빈씨의 말에 따르면 박 명예회장은 병이 심하게 악화됐을 때 유서까지 미리 준비해 놓을 정도로 인생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수술 직후 박 명예회장이 성빈씨에게 건넨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함의를 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본인의 한평생을 돌이켜본 직후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머물다 귀국해 현재 통신 솔루션 업체인 사운드파이프코리아 대표를 맡고 있는 성빈씨. 그 역시 아버지처럼 기업인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아버지란 존재는 그에게 늘 범접할 수 없는 큰 그릇이었다.

“아버지는 평생 말보다는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셨어요. 평생 나라를 위해 살아오신 분이라 가족과 함께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걸어 오신 길을 보고 자라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4년 박 명예회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들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얼마 전 언론에서 ‘내 생애 최대의 실수는 TJ가 아니라 YS를 대통령 후보로 민 것이다. 나는 색맹이었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얘기지요. 지금 내 마음은 오히려 편안합니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아들이 그래요. ‘아버지의 대외적 이미지가 나쁘지 않아 자기가 처신하기 편하다’고요.”

그는 아들에게 떳떳한 아버지였다는 것만으로도 본인의 인생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부인 장옥자 여사와 와인 잔을 들고 있다.

박 명예회장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로 살아왔던 부인 장옥자(77) 여사. 그는 남편의 생을 어떻게 평가할까. 장 여사는 이날 잔치에 겨자색 한복 치마와 꽃무늬 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고 시종일관 박 명예회장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한 재원으로 꽃다운 나이인 24세에 27세의 박 명예회장을 만난 그는 반백년을 박 명예회장과 동고동락했다.

평생 군인의 아내이자 기업인의 아내, 총리의 아내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주인의 자리에 있었지만 시련도 많았다. 타협을 모르고 원리원칙에 강한 가난한 군인의 아내로 살았던 장 여사는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를 등에 업고 셋방을 구하러 다니다 차가운 겨울 바람에 첫 아이를 급성 폐렴으로 잃는 슬픔도 겪어야 했다.

93년 박 명예회장이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 보복으로 눈물을 머금고 일본으로 정치 망명을 떠날 때도 아무 말 없이 곁에서 짐을 꾸렸던 고마운 아내였다.

“행복하지, 더 무슨 욕심이 있어”

가족석에 조용히 앉아 팔순 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장 여사에게 다가가 50년 동고동락한 남편 박태준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평생 조국을 위해 사신 분입니다. 우리 가족은 그분을 우리 집안의 가장으로만 여기지 않았어요. 나라에 내드린 지 오랩니다. 원래 팔순 잔치도 이렇게 크게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데 자식들이 평생 아버지께 해 드린 게 없다고 마련한 자리예요. 저희 가족으로서는 그분의 가족으로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죠.”

‘박태준’은 여전히 건재했다. 박 명예회장이 팔십 평생 살아온 두툼한 삶의 궤적을 증명하듯 그의 팔순 잔치에는 대한민국 정·재계 원로와 현직 인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일찍부터 행사장을 찾은 조석래(72) 전경련 회장은 “박태준 명예회장은 나와 일본 와세다대 선후배 관계로 평소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며 “한국 경제계의 거목이며 한·일경제협회를 최초로 만든 분으로 우리 기업인들에게는 귀감이 될 위인”이라고 말했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대한민국이 박태준 명예회장 같은 사람을 가지고 있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그분은 모든 기업인이 존경하는 상징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이날 포스코의 원로 회장단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한경로 전 회장과 정명식 전 회장이 참석했으며 현직에서는 이구택 포스코 회장, 윤석만 사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이구택 회장은 “박 명예회장은 여전히 포스코의 상징이자 전설”이라며 “이렇게 많은 손님이 온 것만 봐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이날은 소설가 조정래(64)씨의 위인전 시리즈인 『박태준』의 출판기념회도 함께 열렸다. 조 작가는 어린이들을 위해 위인전 시리즈를 집필 중이다. 총 30권 가운데 신채호·안중근·한용운·김구·박태준 등 5권이 1차로 출간됐다. 생존 인물로는 박태준이 유일하다.

조 작가는 인사말을 통해 “생존 여부에 상관없이 박 명예회장은 포항제철 설립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군 주인공이며 한국 경제에 획을 그은 인물이라 아이들에게 박 명예회장의 일생을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행사장 헤드 테이블에 앉아 잠시 무념무상에 빠져 있는 박 명예회장에게 다가가 격동의 세월을 이기고 팔순을 맞은 소회를 물었다.

“…뭐 딱히 할 말이 있나…. 우리나라 경제 발전과 더불어 살았으니 얼마나 행복해…. 행복하고 말고.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아이들에게 고마울 뿐이지. 더 무슨 욕심이 있어.”

박미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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