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담배 파이프 在美 화가 작품서 햇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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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불리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생전에 애지중지하던 담배 파이프가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설치미술가 강익중(44)씨의 작품 속에서 다시 탄생한다. 오는 4월 1일 일반에 공개될 그의 새 작품에 주요 소재로 채택된 것이다. 강씨는 지난해 뉴저지주 공공예술위원회로부터 프린스턴 공공도서관(프린스턴대 정문 앞)에 설치할 작품을 의뢰받았다. 고심 끝에 그는 작품 제목을 '행복한 세상(happy world)'으로 정하고 지역 주민을 제작 과정에 참여시키기로 했다.

강씨는 가로.세로 3인치의 작은 판 5천개를 붙여 만드는 작품에 1천개는 주민들이 낸 애장품으로 꾸미기로 했다. "주민이 출품한 물건(오브제)이 다 깊은 사연을 담고 있어 소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어릴 때 손녀가 갖고 놀던 인형을 내놓은 할아버지와 9.11 테러 때 숨진 딸의 사진을 낸 어머니가 있는가 하면 멕시코 출신 주민은 나무 조각에 호랑이 얼굴을 그린 것을 내놨다. 한 한인은 손때가 묻은 가족 사진을, 중국계 주민은 민속 조각품을 제출했다. 프린스턴대 도서관에 걸렸던 시계를 내놓은 주민도 있다.

접수된 여러 물건 가운데 단연 화제가 되는 게 아인슈타인의 파이프. 아인슈타인의 사진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 파이프는 그가 세상을 뜨기 전 자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사촌 여동생의 손에 쥐어졌다. 이번에 이 애장품을 내놓은 사람은 아인슈타인 사촌 여동생의 손자다. 그는 이 파이프를 박물관에 기증할 생각도 했으나, 아인슈타인이 프린스턴대 교수로 마지막 20년 이상을 보낸 이 도시의 도서관 벽에 걸리는 것이 더 의미있다고 판단했다. 이름 밝히길 거부한 이 기증자는 이 파이프를 누가 훔쳐가지 않을까 아직도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강씨는 "우선 파이프를 유리로 싸겠으며, 필요하면 감시카메라나 경보장치까지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씨는 1994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씨와 '멀티플 다이얼로그'전을 열었고, 3년 뒤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특별상을 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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