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숨겨둔 全씨 재산 이제야 드러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검찰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의 차명계좌에서 발견된 괴자금 1백67억원 가운데 73억5천만원을 全씨의 비자금으로 확인했다. 예금이 29만1천원뿐이라고 딱 잡아떼던 全씨의 법정 진술이 허무맹랑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全씨 비자금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어서 앞으로의 검찰 수사가 주목된다.

全씨는 1997년 뇌물죄로 추징금 2천2백5억원을 선고받은 이후 검찰이 추적해 압수할 테면 하라는 식으로 비자금의 존재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그런 그가 기업체에서 수수한 돈을 무기명 채권 형태로 숨겨오다 자식에게 넘겨준 것은 후안무치한 행동이다. 자신은 돈 한푼이 없고 주변에서 도와주어 살아간다는 그의 말이 얼마나 거짓인지 드러났다. 퇴임 이후 흥청망청 씀씀이 크게 지낸 것도 결국은 숨겨둔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뇌물을 아들의 사업자금으로 준 全씨의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에도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부정한 뇌물을 유산으로 건네주다니 말이다. 아들 재용씨도 문제의 돈을 외할아버지에게서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으니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全씨가 할 일은 지금이라도 은닉 중인 재산의 규모를 자세하게 밝히고 추징금을 자진 납부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빛 바랜 전직대통령의 명예를 다소나마 지킬 수 있다. 검찰이 재용씨의 괴자금 실체를 파악했을 정도라면 全씨가 아무리 꽁꽁 감추고 입을 다문다 해도 비자금의 전모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시간 문제다.

검찰이 그동안 추징한 全씨의 비자금은 3백32억원에 불과하다. 살던 집이 경매돼도 꿈쩍않는 全씨를 압박하는 방법은 재용씨의 괴자금 수사에서 보여준 것처럼 집요한 추적밖에 없다. 우선 全씨를 소환해 아들에게 비자금을 준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 재용씨의 괴자금과 관련이 있는 全씨 측근들에 대한 수사의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된다. 全씨 가족과 친인척의 재산이 정당하게 조성됐는지를 다시 살펴보고, 가차명계좌는 물론 사채시장에서 유통되는 무기명채권의 흐름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