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s] 도전 ! 가사·육아 도우미 '엄마 손' 정성은 기본 응급 치료법도 배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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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9일 오후 서울 명동의 서울YWCA 대강당. 800여 명의 40~60대 여성들이 건강관리 강좌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YWCA의 ‘가사돕는이’들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20시간의 밀도 높은 교육을 받는다. 한 달에 한 번씩 재교육도 받는다. 서울YWCA 고혜승 간사는 “가사돕는이는 전문 교육이 필요한 당당한 직업인”이라고 말했다.

가사돕는이·산후조리사·아기돌보는이 같은 생활도우미가 이제 버젓한 직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YWCA는 석 달에 한 번씩 신입 회원을 뽑아 교육한 뒤 도우미를 파견한다. 내년부터는 서비스 질을 더 높이기 위해 도우미를 평가·관리하는 ‘서비스 등급제’를 도입한다. 고객의 만족도와 내부교육, 봉사활동 참가 횟수 등으로 점수를 매겨 우수·일반·미달 세 등급을 부여한다. 내년엔 이를 도우미 배치의 참고자료로 활용하고, 등급에 따라 임금도 차등화할 계획이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생활도우미 수요는 증가 추세다. 전업주부였다가 도우미 일을 시작한 세 사람을 통해 이 세계를 들여다봤다.

◆15년째 가사돕는 이석자(60)씨=가사도우미 일은 청소·빨래·설거지·요리·다림질 등 보통 주부들이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입 가전제품 작동법, 밑반찬 만들기 등을 YWCA에서 배우긴 하지만 대개 하던 일이라 어렵진 않다. 대신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것은 대화 방법. 일하는 집의 주인이 젊어도 존댓말을 쓰는 게 좋다. 상대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친근감 있는 화술을 배우기도 한다.

몸이 고된 것보다 심리적 스트레스가 더 힘들다는 사람도 있다. 집안 일을 하는 데 자기 스타일을 너무 내세우지 말고 회원 가정에 맞출 필요가 있다. 음식 할 때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 집이 늘어나 이런 점도 유의해야 한다.

원래 가사돕는이의 일에는 육아는 빠져 있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가사 틈틈이 아이를 돌봐 줘야 할 경우도 있다.

예전엔 흔히 가정부·파출부·식모 등등의 호칭과 함께 하대받는 직종이란 인식이 더러 있었지만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 나름의 전문직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지닌 이가 크게 늘었다. 서울YWCA가 내건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당은 5만원이다. 오후 5시 이후까지 일하면 시간당 7000원의 초과 근무수당을 받는다.

◆13년차 산후조리사 하종수(66)씨=산후조리사는 산모와 신생아를 돌보는 일을 한다. 산모 유방 마사지, 신생아 목욕, 빨래, 요리 등이 주된 일이다. 이를 위해 신생아 목욕법, 산모 산후체조 등 이론과 실기교육을 2주간 전문적으로 받는다.

아기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이상이 있으면 병원에 가는 것도 제 일이다. 아이를 길러 봤더라도 이런 부분은 꼭 교육을 받아야 한다.

갓난아기는 밤에 자주 깨기 때문에 산후조리사가 가정에 입주하길 바라는 부부가 많다. 현재 활동 중인 회원 400여 명 중 절반 정도가 입주형이다. 입주형은 2주에 하루씩 휴가를 쓴다. 일당은 7만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출퇴근형은 5만원을 받는다. 연년생이나 쌍둥이는 1.5배를 받지만 일이 고돼 꺼리는 사람이 많다.

산후조리사는 평균 한 집에서 한 달 정도 일한다. 하지만 회원 가정이 원하면 더 오래 있을 수도 있다. 지금은 다음달 돌인 아기와 한 집에서 지낸다. 힘든 건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는 것. 기본적으로 아기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권하고 싶은 직종이다. 내 경우는 마음이 젊어지는 것 같아 즐겁다.

◆10년째 아기 돌보는 김두국(49)씨=아기 목욕, 이유식 만들기, 아기 옷 빨래 등을 주로 한다. TV를 보면서 같이 율동을 하거나 색종이를 접는 등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춰 놀아 주는 일도 중요하다.

보통 애를 키워 봤어도 신생아를 다뤄 본 지는 오래됐기 때문에 일하기 전에 교육을 꼭 받아야 한다. 아기가 설사나 기침을 할 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도 배워 둬야 한다. 교육을 받으면서 직업의식을 갖추는 효과도 있다.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인 큰애와 네 살인 작은애를 함께 돌본다. 큰애가 신생아일 때부터 쭉 한 집에서 일해 왔다.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아이가 여러 아이들과 섞여 노는 걸 볼 때다. 아이를 바르게 잘 키웠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 힘든 건 아이가 아플 때다.

월급은 아기가 한 명일 때 90만원, 두 명일 땐 120만원이다. 근무시간(오전 9시~오후 6시)을 초과하면 추가 수당을 받는다. 솔직히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지만 아기를 키우는 보람 때문에 마음을 달리 먹는다. 다만 적성이 맞지 않거나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하기 힘든 일이다.

글=한애란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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