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오페라 '정읍사', 판소리·국악기 신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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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본고장 전북에서 판소리를 접목한 창작 오페라를 만든 것은 매우 참신한 시도다. 서양 오페라보다 판소리나 창극(唱劇)에 호응도가 높은 지역 정서를 감안할 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최근 '판소리 오페라'라는 장르를 개척해온 전주소리오페라단(단장 우인택)이 지난 7~8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정읍사'(김정수 대본, 지성호 작곡)를 무대에 올렸다.

그러나 판소리 명창이 주역으로 출연하고 군데군데 해금 등 국악기가 가세할 뿐 전체 구성에서는 서양식 오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여주인공 월영 역을 굳이 소리꾼에게 맡길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판소리 명창의 얘기를 다룬 '진채선'과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서양 창법으로 부르는 남자 주인공 양곤 역과의 2중창은 부자연스러웠다.

대체로 대본의 노랫말은 반복이 많고 길어 정작 중요한 부분에선 단순한 대사로 처리되는 대목이 많았다. 이 부분에선 오케스트라 연주가 TV 사극의 배경음악처럼 들리기도 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류의 뮤지컬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었고 심지어 푸치니의 '라보엠' 2막 피날레 장면의 음악을 그대로 인용하기도 했다.

국악가요.한국가곡.오페라.뮤지컬 양식이 혼란스럽게 섞여 순간적인 효과는 냈지만 대하 드라마 같은 통일성은 부족했다. 준비 기간이 충분했더라면 작곡자의 탄탄한 관현악법과 선율 작법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거창한 역사물이나 위인전 일변도에서 탈피해 역사적 격변기에 보통 사람들이 겪은 인간 드라마를 소재로 택한 것은 좋았다. 합창과 독창을 적절히 배합해 드라마의 긴장도를 높였다.

오는 20~21일 정읍사예술회관 공연을 끝내고 좀더 보완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엿보이는 줄거리였다.

전주=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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