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 이명박 잘못일 수 있고 정치적 목적 있을 수도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연루 의혹이 제기되는 BBK 사건과 1997년 김대중(DJ) 당시 국민회의 후보의 비자금 사건.

10년 간격을 둔 두 사건은 검찰 수사 여부에 따라 대선 향배가 좌우되는 메가톤급 변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97년 당시에는 김영삼(YS) 대통령과 김태정 검찰총장이 수사를 유보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또 있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가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이 후보가 검찰 수사에 기대를 걸었거나 걸고 있다는 점도 일치한다. 이 후보는 10일 북한산 산행길에서 BBK 사건을 거론했다. 그는 "BBK 사건을 잘 모른다. 이 사건에 대해 말들을 많이 하는데 정말 자기 잘못일 수도 있고 정치적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가 BBK 사건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주장이다.

이회창 후보 진영은 "BBK 사건으로 이명박 후보가 낙마할 경우 이회창 후보가 대신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이명박 후보의 구속 또는 기소 가능성까지 언급한다. 그러면서 "이명박 후보가 흔들릴 경우 한나라당 지지 성향의 표들이 우리 쪽으로 올 것"이라고 한다. 지지율 2위에서 1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97년에도 그랬다. 10월 초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DJ 비자금을 폭로하자 같은 당 이회창 후보는 검찰이 적극 수사에 나서도록 종용했다. 이 후보는 지지율 1위이던 DJ의 추락을 기대했다. 강 총장은 당시 "폭로 자료를 이회창 후보가 건넸다"고 말한 바 있다.

이회창 후보의 97년 기억은 그러나 씁쓸하게 끝났다. 강 총장의 폭로 이후 2주 만에 김태정 검찰총장이 "극심한 국론 분열 등 대혼란이 분명하다"며 수사 유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YS가 "폭동이 일어나 선거를 치를 수 없을 게 뻔하다"며 유보를 지시했다고 한다.

2007년에는 어떻게 될까.

청와대와 검찰은 신속하게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검찰은 "대선 후보 등록 전인 25일까지 끝내도록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검찰총장은 23일 바뀐다. 정상명 현 총장은 한나라당 경선 막판에 이명박 후보에게 불리한 수사 결과를 발표토록 했다는 논란이 일었으나 조만간 2년 임기가 끝나 물러난다.

97년 YS가 '수사 유보'를 결정한 것처럼 이번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이 최대 변수다. 노 대통령으로선 폭발력이 있을 수도 있는 BBK 수사의 결과물을 정동영 후보가 아닌 이회창 후보가 누릴 수 있는 상황이 탐탁지 않을 수 있다.

한나라당은 일전 불사의 자세다. 이명박 후보는 11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힘으로 지켜달라"고 말했다. 이방호 사무총장은 최근 "검찰의 정치공작적 태도가 있다면 민란이 일어날 수 있는 수준으로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달아오르는 BBK 의혹 공방=BBK 사건의 주역인 김경준씨의 귀국을 앞두고 정치권에선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김씨가 무슨 발언을 하느냐, 김씨와 함께 넘어올 미국 법원의 재판 기록에 무슨 내용이 담겼느냐에 따라 대선 판도의 향방이 좌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측은 검찰 조사가 본격화할 경우 범여권의 검증 공세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럴 경우 당 안팎의 조직을 총동원해 공작정치 규탄대회를 하는 등 역공세를 펼칠 계획이다. 이방호 사무총장은 "최근 당 내분 사태와 이회창씨 출마 등 잇따른 악재로 인한 수세 국면에서 벗어나 앞으로 이슈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김종률 의원은 "김씨 귀국 후 검찰이 BBK와 관련 업체인 다스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 이명박 후보의 대선 후보 등록 무효 사유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한나라당은 당헌.당규와 공직선거법 규정에 비춰 후보 교체를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정애.채병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