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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키즈] 손에서 손으로 건너온 책 "이곳에서 새로 태어났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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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름다운 가게가 운영하는 헌 책방 ‘뿌리와 새싹’에 놀러온 유지현·지은(왼쪽부터) 자매가 직원(맨 오른쪽)으로부터 책방 이용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김형수 기자]

“책도 사람처럼 태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할까?” 어느 날 둘째 아이가 무심코 던진 질문이다. 그동안 두 아이를 데리고 책나들이를 하면서 책을 쓰는 작가(한무숙)의 삶도 들여다보고, 공방에서 책 만드는 법도 배웠다. 아름다운 책을 만드느라 온 인생을 바친 장인(윌리엄 모리스)도 알게 됐고, 이색적으로 종묘 안의 책 읽는 공간(역사자료실)도 가봤다. 책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 그러나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곳. 헌책방 나들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서울 신촌에 있는 ‘뿌리와 새싹’에 7일 다녀왔다.

헌책방 하면 낡고 손때 묻은 책들이 꽂힌 어두운 공간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올 여름 호주 시드니에서 마주친 재활용 서점이나 도쿄의 북오프처럼 깔끔하고 환한 분위기의 헌책방도 있다.

뿌리와 새싹도 그런 곳이다. 뿌리와 새싹은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 박사가 제안한 환경운동의 이름이다. 비록 연약하지만 벽돌도 뚫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새싹처럼,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용기를 갖고 나눔과 환경 운동을 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홈페이지(cafe.naver.com/rootsandshoots)에 들어가 보니 ‘잠들어 있는 책에 날개를 다는 법’이라는 글이 실려 있었다. 나눔을 귀하게 여겼던 구달 박사의 뜻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더 이상 읽지 않는 책을 모아 기증하기로 했다. 아이들도 어렸을 적 읽은 동화책을 기꺼이 내놓았다.

아름다운 가게가 운영하는 이 곳은 민속주점이었던 한옥을 리모델링했다. 친환경 페인트를 쓰고 깨진 벽돌과 타일, 버려진 의자 등을 모아 사용하는 등 책방 전체를 재활용 인테리어로 꾸몄다.

입구를 들어서면 “여기가 정말 헌 책방 맞아?”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화장실만이 이곳이 한옥이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공간이다.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천장과 찌그러진 세숫대야로 만든 세면대가 정겹다.

이곳에는 기증받은 책·음반·비디오 1만2000여 점이 있다. 맨 뒤에 연애편지를 꽂아놓은 책, 인상에 남는 글귀 아래 밑줄을 그어놓은 책, 책을 산 날짜와 선물한 사람 이름을 표지 안 쪽에 써놓은 책, 친구와 찍은 사진이나 낙엽을 책갈피로 사용한 책, 저자의 서명을 받았던 책…. 한 권 한 권마다 예전 주인의 흔적과 마주친다. 이런 ‘발견’이 모여 헌책방 나들이를 더욱 각별하게 한다.

뿌리와 새싹에는 환경·생태·평화·NGO 관련 도서로 꾸민 작은 도서관도 있다. 대여기간은 10일이며, 권당 500원의 기부금을 받는다. 좋은 책에 뿌리를 내려 그 안에서 행동과 철학의 새싹을 피워내고자 노력하는 운영진의 뜻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평일에는 15인 이하의 소모임에 빌려주기도 한다.

15일에는 제인 구달이 내한, 서울 인사동에서 환경 퍼포먼스 ‘지구별 초록행진’을 벌인다. 이화여대 생명과학부와 뿌리와 새싹이 공동주최한다. 일흔 살이 넘었지만 전 세계를 돌며 저술과 퍼포먼스 등으로 환경의 소중함을 전하는 그를 만나보는 또 다른 유익한 나들이가 될 것 같다.

글=홍준희<나들이 칼럼니스트>, 사진=김형수 기자

<엄마랑 아이랑 책나들이 게재순서>
1. 한무숙 문학관(10월 10일자 24면)
2. 책공방 북아트 센터(10월 15일자 22면)
3. 헤이리 북하우스(10월 22일자 25면)
4. 종묘 역사자료실(11월 5일 23면)
5. 헌책방 뿌리와 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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