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느낌도 때론 거짓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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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27면

“맞혀봐. 어느 손가락이게?” 친구가 내 목 뒤에 손가락 하나를 몰래 대고는 알아맞혀 보라고 한다. 못 맞히게 되면 꿀밤을 맞기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 목 뒤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보지 않고 순전히 감각에만 의지해서 맞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점점 오기가 발동할 무렵, 갑자기 친구가 “나 이번에는 안 했지롱…” 하고 놀려댄다. 분명히 무언가가 느껴졌는데, 정말 이상한 노릇이다. 유령에라도 홀린 것일까?

하긴 더욱 이상한 사례도 있다. 사고로 왼팔의 팔꿈치 부분을 잃어버린 한 남자는 여전히 자신의 팔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사고의 충격으로 그의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 아니다. 잃어버린 팔의 감각을 여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상실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는 ‘환상사지’라고 하는 고전적인 사례다. 뇌가 팔다리의 유령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겪는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잃어버린 왼팔이 남자의 얼굴 부분과 팔 위쪽에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남자의 얼굴에 손을 대면 잃어버린 왼팔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 엄청난 사실은 뇌의 표면에 그 비밀이 담겨 있다. 감각을 느끼는 몸의 부위는 각각 뇌의 일차감각피질에 지도화되어 있는데 손의 감각을 느끼는 부위와 얼굴의 감각을 느끼는 부위가 매우 인접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환상사지’에 대해 연구해온 신경학자 라마찬드란은 ‘뇌자도(腦磁圖)’라는 영상기법을 이용해 잃어버린 왼팔로 인해 뇌의 감각피질 부위가 재배열됨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에 따르면 발에 대한 성적인 집착을 보이는 ‘풋 페티시’의 의학적 기원 역시 대뇌의 감각피질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발의 감각을 느끼는 부위가 성기의 감각을 느끼는 부위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뇌는 왜 이런 착각을 일으키는 것일까. 존재하지 않더라도 뇌가 받아들이면 우리는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의 모습을 그대로 보지 않고 신경구조를 변화시키는 비밀의 열쇠는 과연 무엇일까.

‘기억한다’라는 뇌의 신기한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자. 유명 브랜드의 고급실크 이불들을 마다하고 한겨울에도 얇은 솜이불만을 고집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솜이불은 그냥 이불이 아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길을 생각나게 하는 보물이다. 솜이불이 살에 닿을 때마다 친구는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렸고, 현재의 추운 기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또 다른 예를 보자. 길을 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당신의 머리를
‘툭’ 하고 쳤다. 당신은 순간적으로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에게 머리를 맞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선생님이신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과거에 비슷한 경험을 안겨주었던 담임선생님을 떠올린 것이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내부의 기억흔적을 더듬는다. 또한 외부의 감각정보가 불확실한 경우 내부의 기억 그대로를 사실이라고 믿어버리기도 한다. 어쩌면 기억생성과 연관된 해마라는 부위에서 지금 일어난 일들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이전의 기억들을 일부 복원시켜 대뇌의 피질부위에서 재연합하는지도 모르겠다. 해마의 손상으로 기억상실증을 겪는 환자들은 새로운 기억을 형성할 수는 없으나, 손상 이전의 것들은 완벽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환상사지’를 경험하게 되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잃어버린 신체의 일부로 인해 그 부위에서 전해오는 직접적인 감각은 사라졌지만, 뇌는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의 신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조차 때로는 거짓일 수 있다는 겸손과 조심스러움을 뇌 속의 ‘유령’이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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