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아메리칸 드림 '셀러브리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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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07면

미국은 원래 영웅을 숭상하는 나라다. “인류 역사는 위대한 인물들의 역사”라는 영국 수필가 토머스 칼라일(1795~1881)의 말처럼 미국 역사도 걸출한 인물들이 써 내려간 역사다.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에이브러햄 링컨,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자동차왕 헨리 포드 등에 대한 미국인의 존경과 사랑은 각별했다.
그러나 20세기에는 위인의 시대가 가고 ‘셀러브리티(celebrity)’라 불리는 유명인의 시대가 도래했다. 아니 유명인이 바로 이 시대 미국의 영웅이다. 이들은 영화ㆍ스포츠ㆍ문화 등의 분야에서 유명해진 사람들이다. 사회역사가 대니얼 부어스틴은 “유명인이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고 정의했다. 말장난 같은 이 표현은 정곡 찌르기에 흔히 인용된다.

미국은 이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분 못지않게 ‘유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가 중요한 사회가 됐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 누구나 유명하게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꿈으로 대체됐다.

셀러브리티는 퍼스트네임(first-name)만으로도 충분히 식별된다. 마릴린(먼로), 오프라(윈프리), 브리트니(스피어스) 등. 신문ㆍ잡지에 난 뒤틀린 캐리커처를 보고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셀러브리티는 다른 분야에도 확산돼 적용되는 통합개념이다. 앨 고어, 고(故) 테레사 수녀, 달라이 라마, 빌 게이츠도 모두 셀러브리티로 볼 수 있다.

학계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코넬 웨스트 교수가 있다. 그는 3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는다. 2000년 당시 하버드대 총장이었던 로런스 서머스는 웨스트 교수가 대외 활동에 치중하느라 정작 학술 활동을 경시한다고 핀잔을 줬다. 그러자 웨스트 교수는 2002년 프린스턴대로 옮겨버렸다. ‘학계 셀러브리티’는 신문 기고, 대중적인 저서 집필, TVㆍ라디오 출연으로 유명해진다. 1990년대 이후 웨스트 교수 같은 소위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이 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이들은 뉴스가 발생했을 때 언론을 위해 ‘한마디 해주는’ 사람들이다.

잘생긴 사람이나 잘난 사람을 좋아하고 추종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셀러브리티 숭배’는 일면 자연스럽다. 그 확산을 가속화한 것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이다. 미국 정치는 원래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정치보다 더 재미있는 엔터테인먼트가 발달하자 사람들의 관심이 옮겨갔다. 심리학자 제임스 하우런은 종교의 쇠퇴와 세속화가 셀러브리티 숭배를 부추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비틀스는 예수보다 인기 있다”고 했던 존 레넌의 말이 허언은 아닌 것이다.

TV에서는 토크쇼나 리얼리티쇼가, 신문에서는 ‘스타일 섹션’이 셀러브리티 문화를 유지ㆍ확산한다. 잡지도 큰 역할을 한다. 유명인을 다루는 잡지들이 미국에서만 매주 750만 부씩 팔린다. 그중 선두주자는 창간된 지 33년 된 잡지인 피플(People)이다. 세계에서 수익성이 제일 높은 잡지다.

셀러브리티 문화의 지나친 면에 대한 우려도 높다. 셀러브리티에 빠져 가족ㆍ친척ㆍ동료ㆍ이웃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숭배하는 셀러브리티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스토킹의 단계를 지나 심지어 셀러브리티를 암살하는 참극도 발생했다. 1980년 존 레넌은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라는 광적인 팬에 의해 암살됐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의 범인은 “여배우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 대통령을 저격했다”고 말했다.

2002년 제임스 하우런은 셀러브리티에 대한 숭배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를 개발했다. 연구대상의 36%는 숭배의 정도가 지나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명인을 자신의 각별한 친구나 애인, 혹은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한다. 심한 경우 셀러브리티가 사망하면 자신도 따라 죽겠다고 한다.

팬들 못지 않게 셀러브리티들도 힘들다. 에어런 스펠링(1923~2006, 영화ㆍTV 프로듀서)이 정의한 셀러브리티는 “돈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사는 돈 많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중 앞에 항상 아름답고 유쾌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들은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감정 노동자’다. 그래서 ‘실제 자아’와 ‘만들어진 자아’ 중 어느 것이 자신의 자아인지 불확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경쟁도 치열하다. 이들은 A·B·C급으로 나뉜다. 포브스는 1999년부터 ‘셀러브리티 100’라는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연간 수입, 구글 조회, 언론 보도, 잡지 커버 등장 횟수 등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 올해에는 100명 중 29명이나 교체됐다. 한때 1위였던 줄리아 로버츠(2000년), 브리트니 스피어스(2002년)도 올해에는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피플도 ‘가장 아름다운 100명’의 셀러브리티를 매년 발표한다.

마돈나는 최장수 셀러브리티 중 한 명이다. 비결은 대중이 질리지 않도록 자신의 모습을 주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마돈나는 2006년 5월 21일부터 9월 21일까지 북미ㆍ유럽ㆍ일본에서 60차례 공연으로 120만 명의 팬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였으며 1억9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셀러브리티는 걸어다니는 ‘1인 기업’이다. 지나친 상업성이 문제시된다. 리얼리티쇼가 사실은 치밀한 각본에 의해 짜인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들은 자신의 치부도 상품화한다. 파파라치들과 공생하기도 한다. 사진작가와 미리 짜고 망원렌즈로 사진을 찍어 파파라치의 ‘작품’인 것처럼 판다.

셀러브리티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 일부는 매니저나 에이전시에 떠밀려서 억지로 기부ㆍ자선 활동을 하기도 한다. 난민ㆍ아동학대ㆍ암ㆍ에이즈ㆍ동물보호 등 셀러브리티가 참여하지 않는 분야는 없다. 폴 뉴먼은 식품회사를 창립해 수익금 전액을 자선단체 기부하고 있다. 2007년 5월 현재 2억2000만 달러 이상 기부했다. 안젤리나 졸리는 유엔난민기구 홍보대사다. 대권 후보를 지지하기도 한다. 오프라 윈프리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를 공개적으로 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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