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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DNA와 베트남 배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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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북한이 베트남과 접근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긍정적인 상황 전개”라고 말했다. 북한이 개방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는 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이 움직이는 걸 보면 힐이 이런 전망을 할 만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베트남의 도이머이(쇄신·개혁) 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지난달 중순 평양을 방문한 농득 마인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답방 초청에도 “베트남의 귀중한 경험을 거울로 삼기 위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를 채택한 이후 무역 확대, 금융시장 자유화 등 시장경제를 급속히 도입해 지금은 연평균 8%에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의 말은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말 김영일 총리 등 고위급 대표단이 베트남을 방문해 시장 경제 도입 전략을 배우려는 자세를 보였다. 경제 개혁을 주도하는 기획투자부를 방문해 꼬치꼬치 물었다. 특히 외자 유치와 관광산업 육성 방안에 큰 관심을 보였다. 머지않아 김 위원장도 직접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베트남은 미국과 피를 흘리며 싸운 뒤 화해한 나라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나라에서 고도성장을 이끌어냈고, 중국과 달리 경제 규모 면에서도 북한과 비슷하다. 반미 구호 하나만으로 배고픔을 달래고, 체제를 유지해 온 북한으로서는 그 이상의 교과서가 없다. 북한 중앙통신이 이례적으로 미국의 대 테러전 협조를 다짐하고, 미국이 연내 북한을 테러 지원국에서 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광경이 아닌가. 2001년 1월. 상하이를 방문한 김 위원장은 “천지개벽”이라고 말했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에 비유해 ‘학습여행’이라고 떠들던 순방이다. 김 위원장은 “(북한으로) 들어가면 젊은 피로 싹 바꾸겠다”며 자책과 질책도 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06년. 김 위원장은 또다시 중국을 방문했다. 후진타오 총서기를 만나 “5년 전 천지개벽한 상하이를 돌아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번에 경제특구를 돌아보면서 더 큰 감동을 받았다” “급속히 변모된 남방 지역의 발전상과 약동하는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격찬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핵 보유(2005.2)와 핵실험 선언(2006.10)이다.

그 감동의 흔적을 힘겹게 찾아보면 남쪽에 ‘선심’으로 내놓은 개성공단 정도다. 겉모양만 몇 번을 다시 보고 찬사를 보내 봤자 소용이 없다. 무엇이 그런 변화를 가져왔는지 근본 요인을 볼 수 없다면 말이다. 김영일 총리가 볼 수 있다 한들 공산당의 집단지도체제를 말할 수 있겠는가. 개성공단도 개혁과 개방이 아니라며 화를 내는 김 위원장에게 개혁·개방을 건의할 수 있겠는가.

김 위원장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옛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한 결과 고르바초프가 퇴장해야 했다. 중국과 베트남도 공산당의 일당 독재는 살아 있지만 개인의 지배는 포기했다.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 호찌민 정도만 역사적 영광으로 남았다. 경제 개방은 정치적 변화를 피할 수 없다. 시장경제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신분을 인정하지 않으면 시장을 키울 수 없다

북한이 흉내를 내려면 김일성 주석만 교과서에 남기고 개인 우상화를 포기해야 한다. 그렇지만 북한은 DNA가 다른 사회주의다. 수령에 대한 절대 충성이 주체사상의 핵심이다. 그 수령은 대를 이어 세습까지 한다. 김 위원장의 말이 적힌 플래카드를 비 맞히지 않으려고 눈물을 흘리고, 불 속에서 초상화를 구해낸 ‘영웅’이 수시로 상을 받는 것이 북한이다. 80년대 주사파가 유행할 시절 운동권 학생들이 학생 대표를 향해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기억도 그 영향이다.

덩샤오핑을 설득해 당 총서기가 3연임을 못하도록 만든 것은 예젠잉(葉劍英)이다. 덩은 최고 실력자로 남았지만 세습은 포기했다. 그러나 북한에는 예젠잉이 없다. 독재자의 감정이 합리성을 압도하는 체제에는 해외 자본이 들어갈 여지가 별로 없다. 북한이 자신의 DNA를 바꾸지 않고도 중국 배우기의 실패를 베트남에서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김진국 국제담당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