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멀찌기, 일찌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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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읍내 장에 가는 날 어머니는 아버지의 뒤를 ‘멀찌기’ 따라오셨다/ 동네 사람들은 싸움을 말리지 않고 ‘멀찌기’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런 일은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일찌기’ 그같이 착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처럼 ‘멀찌기’와 ‘일찌기’로 쓰기 십상이지만 ‘멀찍이’ ‘일찍이’가 바른말이다.

‘멀찍이’는 ‘멀찍하다’에 ‘-이’가 붙어 부사가 된 경우로 ‘사이가 꽤 떨어지게’라는 뜻이다. ‘멀찌감치’ ‘멀찌가니’도 ‘멀찍이’와 동의어다. “멀찍이 도망가다/ 멀찌감치 물러앉다/ 멀찌가니 떨어져 걷다”와 같이 쓰인다.

‘일찍이’는 부사 ‘일찍’에 ‘-이’가 붙은 경우로 ‘①일정한 시간보다 이르게 ②예전에 또는 전에 한 번’이라는 뜻이다. “일찍이 출근하다/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처럼 쓰인다. ‘일찌감치’는 ‘①조금 이르다고 할 정도로 얼른 ②될 수 있는 한 얼른’이라는 뜻으로 ‘일찍이’와 의미가 조금 다르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자리에 들었다/ 안 될 일은 일찌감치 걷어치워라”처럼 쓰면 된다.

맞춤법 제25항에 따르면 ‘-하다’가 붙는 어근에 ‘-히’나 ‘-이’가 붙어 부사가 되거나, 부사에 ‘-이’가 붙어 뜻을 더하는 경우에는 그 어근이나 부사의 원형을 밝혀 적는다고 돼 있다. ‘어렴풋이, 버젓이, 뚜렷이/ 더욱이, 생긋이, 해죽이’ 등이 그러한 예다. 1988년 맞춤법 개정 이전에는 ‘일찌기’가 표준어였기에 더욱 혼동하고 있는 듯하다.

한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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