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운동부 '엽기 얼차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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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의 운동부에서 일어난 엽기적 체벌에 대해 대한체육회가 진상 조사에 나섰다.

'체육계 자정운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체육회에는 지난주 한 통의 진정서가 접수됐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아이스하키부 학부모 대표 명의로 된 진정서에는 "감독 김모씨가 엽기적 체벌로 선수들을 괴롭혀 왔고, 이를 대학 측에 수차례 알렸지만 묵살당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상상 못할 선수 길들이기=진정서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9월 실업팀과의 평가전에서 지자 선수들을 숙소 뒤로 불러냈다. 공터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그 속에는 소주병이 있었다. 흙바닥에는 과자 부스러기도 뿌려져 있었다. 김씨는 "너희는 사람이 아니라 개"라고 소리치며 뜨겁게 데워진 소주를 선수들에게 강제로 먹인 뒤, 입으로 바닥의 과자를 주워 먹게 했다. 김씨는 이어 선수들에게 힘껏 달린 뒤 머리를 벽에 찧도록 시켰다. 기자와 통화한 선수는 "진정서에 있는 내용은 모두 다 사실"이라며 "직접 때리는 것보다 더 아팠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해외전지훈련 때는 선수들에게 엽기적 협박도 했다. 술취한 김씨는 선수들을 집합시켜 놓고 술을 마시다 유리컵을 이로 깨뜨려 씹었다. 한 선수는 김씨가 깨진 유리를 씹으면서 "까불면 혼난다"고 협박해 겁먹었다고 했다. 다른 학부모와 선수들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해 줬다.

이에 대해 김씨는 "뜨거운 술을 먹인 것은 정신력 강화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유리컵을 씹은 일은 없다. 일부 학부모는 '더 강하게 다뤄 달라'고 요구했다"고 강변했다. 김씨는 "해당 학부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도 했다.

◆대학도 자체조사 나서=해당 학부모는 대학 측에도 여러 차례 이런 사실을 알렸지만 "훈련을 강하게 시키기 위해 그랬다"는 답변만 받았다. 그는 "대학 운동부를 총괄하는 체육위원장 김모 교수에게 모든 사실을 알렸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어 대한체육회에까지 호소하게 됐다"며 "총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대학 측이 거부했다"고 말했다.

진정서를 접수한 대한체육회는 사실 확인에 나서는 한편, 이 대학 총장 앞으로 진정 내용을 통보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가 '자격정지' 등 직접적 제재를 할 방법은 없다. 김씨가 직함만 감독일 뿐 체육회 등록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승곤 체육회 자정운동본부장은 "명백한 폭행이나 횡령처럼 확실한 범죄행위는 법적 절차에 맡길 수 있지만 이번처럼 비도덕적 행위의 경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대학 측은 체육회가 내용 확인에 나서자 뒤늦게 김씨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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