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나눔공동체] 남 줘서 행복한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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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진화한다. 더 이상 사회공헌은 소외계층에 대한 자금 지원이나 일회성 이벤트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주요 기업들은 이미 이를 ‘핵심 경영 전략’ 중 하나로 삼고 전사적으로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다.

별도의 전문 봉사조직·시스템을 갖추는 회사도 크게 늘었다. 몇몇 기업들은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평가에도 사회공헌 실현 여부를 반영할 정도다. 회사마다 차별화한 테마를 잡아 공헌 활동에 나서려는 것도 새로운 흐름이다.

이런 움직임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RM)’이 회사의 평판뿐 아니라 경영 실적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숭실대 정무성 사회복지대학원장은 “한국 기업들의 평균 사회공헌 투입 비용은 일본보다 많을 정도로 규모 면에선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며 “다만 특정 문제와 현안을 끝까지 해결하려는 ‘지속형 공헌 활동’비중을 늘리는 게 숙제”라고 말했다.

◆시스템 갖춰 공헌=국내 기업 중 제일 먼저 ‘조직’을 갖춰 공헌 활동에 나선 곳은 삼성이다. 삼성그룹은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켰고, 2005년엔 국내 유일의 사회공헌 최고책임자(CEO) 제도를 도입했다. 삼성사회봉사단 황정은 부장은 “해마다 16만 명에 달하는 삼성 임직원이 개별적으로 15시간씩, 총 240만 시간을 자원 봉사 활동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LG그룹은 영역별로 전문적인 공헌 활동을 하기 위해 공익재단 5개(복지·문화·교육·환경·언론)를 설립했다. LG복지재단의 경우 전국 지방자치제를 위해 복지관 14곳을 건립해 주고 총 31억원 상당의 이동목욕차량을 지원했다. 현대·기아차 그룹은 올 4월 ‘임직원 가족 봉사단’을 발족한 데 이어 지난달엔 ‘해비치 사회공헌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사회 공헌을 위한 ‘양 날개’를 완비했다.

GS칼텍스도 체계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2005년 2월 사회공헌팀을 신설했다. 또 소외계층 복지 증진 등 각종 사회복지 사업을 펼치는 GS칼텍스재단을 설립했다. 회사 측은 이 재단에 앞으로 10년간 총 1000억원을 출연키로 했다. STX 역시 지난해 말 복지재단을 설립해 저소득층 주택 개량과 소외계층 자녀 지원 사업 등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봉사도 차별화 전략=S-OIL은 ‘지역 특화’ 전략을 택했다. 이를 위해 올해 초 임직원 750여 명으로 구성된 ‘S-OIL 사회 봉사단’을 서울·울산·경기·강원·충청·전라 등 전국 6개 지역에서 가동해 지역 특성에 맞는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동국제강 역시 ‘DK 봉사단(포항제강소)’ ‘이름다운 사람들(인천제강소)’ 등 사업 거점별로 봉사단을 조직했다. 항공업계는 해외 이동이 자유롭다는 특성을 백분 활용해 국제 공헌 활동에 적극적이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캄보디아 프놈펜에선 승무원들로 구성된 8개 봉사팀이 교육·생활 봉사 활동을, 베트남 번쩨성에선 ‘사랑의 집짓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포스코는 ‘자원봉사 마일리지’ 프로그램으로 임직원들의 사회공헌 활동을 독려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원용득 사회공헌팀장은 “그간 사회복지나 학술 및 교육, 문화·예술 지원 쪽에만 몰렸던 기업 공헌 활동 영역이 최근엔 국제구호와 의료 보건, 환경 보전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헌활동,‘비용’아닌 ‘투자’=기업들의 사회 공헌은 이처럼 하나둘씩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 기금 규모도 해마다 늘고 있다. 1998년엔 3327억원에 그쳤지만 지난해 1조8004억원이었다. 10년 만에 6배나 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기대치에는 아직 못 미치고 있다.

이런 인식은 전경련이 최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설문 결과 응답자의 절대 다수(97.3%)는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응답자의 절반 이상(56.3%)이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미미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LG공익재단 오종희 총괄 부사장은 “기업이 사회공헌에 쓰는 돈은 비용이 아닌, 회사의 지속성장 가능성을 높이고 미래의 고객을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안 나온다고 속단하지 말고 공헌 활동을 통해 기업 이미지가 좋아져 생산·판매 증가로 이어질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지속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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