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버림받은 '어둠의 쇼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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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 제1 야당인 민주당 대표직을 4일 사임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가 최근 1년여 동안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나부터 변할 것이다." 자신에게 따라붙었던 '어둠의 쇼군(將軍)' '음(陰:막후)의 정치가'라는 이미지를 벗고 '열린 정치인'이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오자와 대표는 1969년 27세에 중의원으로 첫 당선한 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의 신임을 받아 승승장구했다. 47세에는 최연소 자민당 간사장으로 취임하며 일본 정계의 '황태자'로 군림했다. 그는 막후협상을 통해 온갖 일을 물밑에서 감쪽같이 마무리 짓는 데 귀재였다. 9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케시타파의 가네마루 신(金丸信) 회장이 총재직을 제의했을 때 그는 "아직 나이가 젊다(당시 49세)"며 고사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언제라도 원하는 때에 뒤에서 조종하면 총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기 때문이다.

93년 6월 자민당을 뛰쳐나와 신생당을 결성, 호소카와(細川) 연립정권을 출범한 뒤에도 막후에서 모든 상황을 조종하면서 총리보다 더 강력한 실세로 군림했다. 하지만 뛰어난 정치감각과 카리스마, 추진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기가 낮았던 이유는 바로 '밀실정치'에 있었다.

지난해 '열린 정치인'을 선언한 오자와 대표는 올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에 압승했다. 정권교체가 눈앞에 다가온 듯했다. 그러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와의 두 차례 밀실회담이 화근이 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밀실정치를 주도했던 장본인이 바로 그 부메랑을 맞은 것이다.

오자와 대표는 4일 회견에서 "일부 언론이 내가 먼저 후쿠다 총리에게 연립정권 제의를 했다고 중상모략했다"고 화살을 언론에 돌렸다. 그로선 억울한 측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소동은 결국 그가 스스로 판 무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립정권 구성과 같은 중차대한 사안을 놓고 전혀 당내 의견 수렴 없이 밀담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변한다고 말만 하곤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도 이번 사태에서 배울 점이 있다.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이 없으면 결국 국민으로부터 오해받고 버림받는다는 사실이다. 대선까지 남은 40여 일 동안 후보 단일화를 비롯해 많은 일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모든 과정은 모름지기 거울처럼 투명해야 한다. 밀실정치가 통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김현기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