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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도 못 푼 이라크 난민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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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 정부는 올해 초 이라크로 미군 병력이 증파된 뒤 종파 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명 피해가 줄었다고 해서 과연 이라크가 더 안전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이라크의 정정 불안은 집을 떠나 떠돌고 있는 난민의 숫자를 보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유엔은 7월 이후 난민 숫자가 매달 6만 명 정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현재 이라크 전체 인구의 16%, 즉 여섯에 한 명이 난민 신세다. 이들 중 절반, 약 200만 명은 다른 나라로 피신했다. 이라크에 있는 나머지 200만 명 역시 갈수록 비참한 상황을 맞고 있다. 시리아·요르단 내 이라크 난민의 경우 이들을 위한 모금 행사가 열리는 등 국제적 지원을 받아 왔다. 하지만 국내에 남아 있는 난민들은 분쟁 현장에 더 가까이 있어 상황이 더 심각한데도 별 관심을 받지 못해 왔다.

이라크에 난민이 발생한 건 2003년 미군의 침공 이전부터다.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이 통치할 당시에도 종파 간 분쟁, 또는 정부 정책에 따라 많은 사람이 강제로 사는 곳을 옮겨야 했다. 그러다 2003년을 기점으로 이라크의 전 국민이 당장에라도 난민 상태에 놓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라크 곳곳이 종족 분쟁에서 어느 한편, 또는 다른 편 종족의 공격 대상이 됐고, 지방 민병대는 세력이 갈수록 커졌다. 정부도, 다국적군도 통제할 수 없는 무법천지가 된 것이다. 어떤 경우엔 다국적군의 군사작전 자체가 난민 발생의 요인이 됐다. 범죄, 기본적 행정 서비스의 부족, 가난도 원인이다.

이라크에 남아 있는 난민들은 종파별 커뮤니티를 찾아다닌다. 같은 종파가 몰려 있는 곳이 타종파의 공격에서 안전하다고 여겨서다. 그 결과 시아파는 이라크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수니파는 남쪽에서 중심부로, 기독교도는 북부 니나와주(쿠르드 자치지역인 모술과 그 주변 지역으로, 이라크에서 기독교도 비율이 가장 높은 곳)로 옮겨간다.

여러 종파가 혼재한 바그다드 같은 대도시에서도 같은 종파가 모여 사는 동네로 난민들이 몰린다. 카르발라·와지트·디얄라·니나와 등에 대형 난민 캠프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 난민은 바그다드나 모술 같은 대도시에서 산다. 이들은 절대빈곤 상태로 긴급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이라크에선 800만 명이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통상 이라크 국민의 25~40%가 식량 지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분류되며, 난민의 경우 이 비율이 훨씬 높다. 하지만 지난해 난민의 3분의 1만 정기적으로 식량 배급을 받았다. 최근 들어 여자와 아이들이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를 뒤지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젊은이들은 약간의 수입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무장단체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모자(母子)가정은 먹고사는 데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성매매에 나서는 여성이 늘고, 인접국으로의 여성·아동 인신매매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이라크 정부는 남편을 잃은 여성들에게 보조금을 현찰로 긴급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관료주의와 부패 때문에 300만 명에 이르는 대상자에게 제대로 혜택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종파 간 분쟁의 여파로 인구의 10%에 이르는 소수민족이 이른바 ‘인종 청소’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라크의 또 다른 비극이다. 이들에 대한 잔인한 공격 때문에 수백 년간 이라크에서 살아온 기독교도·야지디교도 등이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난민 사태는 영구화하고 있다. 재원이 부족한 일부 지방 정부가 난민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면서 이들의 처지는 악화일로다. 이라크의 안전 문제를 논의할 때 마땅히 이들 난민이 처한 곤경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시루크 알라바야치 바그다드 이라크연구센터 소장

정리=신예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