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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어려운 중간광고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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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974년 금지된 TV 중간광고를 방송위원회가 최근 허용키로 했다. 중간광고에 대해선 97년부터 찬반 논란이 계속돼 왔다.

방송계는 프로그램 질 향상을 위한 안정적 재원 마련, 광고계는 광고의 효율적인 재분배를 이유로 찬성한다. 다른 언론은 시청자 보호라는 지상파 방송의 공익성을 도외시한 처사, 소비자 단체는 광고 노출 극대화의 부작용 등을 들어 반대한다.

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 허용은 방송 구조의 근간을 뒤흔들 사안이기에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디지털방송 재원 마련을 위해 추진하다 보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는 지상파 방송 중심 시각에서 탈피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시청자들에게 미칠 사회문화적 효과는 물론 다른 매체 산업에 미칠 잠재적 후방 효과를 헤아려야 한다.

우리나라 방송 콘텐트 생산의 양대 축은 유료 매체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와 지상파 방송사다. 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는 PP를 더욱 약화시킬 것이다. 일부 사업자를 제외한 대부분 PP는 심각한 경영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 영상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 때문인데, 최근 국내 방송 정책으로 인해 더욱 어려워졌다. 대표적 사례가 대외 개방 정책과 국내 지상파 디지털 정책이다.

정부는 올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PP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 대한 간접투자를 100% 허용했다. 10억원 이상 당기 흑자를 기록하는 약 15개 회사를 제외하곤 모두 재정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방송위원회는 다양한 지원을 약속했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정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정책 역시 PP들을 위협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은 애초 고화질 방식(HDTV)으로 결정했으나, 지난해 월드컵 이후 다채널 전략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대외 개방이나 다채널 전략은 시대 흐름이자 기술 발전 추세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상상을 뛰어넘을 경제적 파급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국회 FTA 특위 자료(2007)에 따르면 한·미 FTA 체결에 따라 해외 PP는 연평균 매출액 2413억원을 점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AGB닐슨미디어(2006)에 따르면 중간광고 허용으로 지상파 방송사들의 광고 매출액은 약 5305억원 정도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진행 중인 매체 정책들로 인해 약 1조원 이상의 PP 매출(2005년도 총매출액 3조1265억원) 잠식 효과에 대해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국내 유료 방송 프로그램 제작 산업이 크게 위축되면서 케이블TV·위성방송·IPTV의 수백 개 채널을 해외 수입물로 채우게 돼 안방을 고스란히 외국 방송사에 내줄 것이다.

중간광고 허용으로 공영방송의 디지털화를 돕겠다는 정책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간광고의 가장 큰 수혜자는 공영방송이 아니라 묵묵히 있는 상업방송사라는 사실에 대해선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다. 방송 콘텐트 산업 기반을 와해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2005년도 41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MBC 본사와 38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SBS의 디지털 전환 비용을 시청자가 부담하는 데 대해 국민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 허용 결정 이전에 이런 문제들에 대한 숙의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이상식 계명대 교수·미디어영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