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중국산에 밀려 사업 접고 티타늄으로 화려한 날갯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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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스엠텍 마대열 사장이 출고를 앞두고 있는 대형 석유화학 설비를 소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티타늄은 우주항공기와 전투기를 비롯해 석유화학 생산 장비 등 내구성이 강한 장비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꿈의 소재’다. 잘 부식되지 않고 열에 강한 특성 때문이다. 우리 산업에 티타늄 장비가 사용된 것은 오래됐다. 그러나 장비가 국산화된 것은 10여 년도 안 됐다.

 티타늄 장비의 국산화를 이끈 기업이 바로 티에스엠텍이다. 이 회사는 티타늄 클래드 소재를 이용해 대형 PTA(고순도 테레프탈산) 생산 장비를 만들 수 있는 세계 5대 기업에 든다. 일본의 히타치·미쓰비시, 벨기에의 코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 회사는 올 초 중국 샹루 그룹이 발주한 3600만 달러 규모의 주요 PTA 생산 설비를 수주했다. 일본의 히타치와 벨기에의 코크를 제치고 따낸 것이다. 이 회사 마대열(51) 사장은 “티타늄 폭찹 크래드 제품에서는 세계 1위”라고 자부했다.

 마 사장은 원래 볼트와 너트를 만드는 동산금속이라는 회사를 1974년 설립해 탄탄하게 경영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싼 제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92년 사업을 접었다. 새 사업을 구상하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게 바로 티타늄이었다. 원료 가격이 비싼 탓에 국내 중소기업들이 선뜻 나서지 못해 티타늄 부품을 전량 수입한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이에 98년 서울 고척동에 티에스금속을 세웠다. 반도체 제품에 들어가는 티타늄 볼트와 너트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수입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있었다.

 조금씩 기술력을 쌓아 가던 그는 2000년 LG마이크론에 티타늄 섀도마스크 에처를 납품하면서 장비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에처는 TV브라운관 부품인 섀도마스크에 50미크론(1미크론=100만 분의 1m) 이상의 구멍 68만여 개를 뚫는 장비다. 구멍을 얼마나 미세하게 뚫느냐에 따라 화질이 달라진다. 이 제품은 일본에서 전량을 수입했다. 장비를 수주하는 데 우여곡절도 많았다. “일본 공급가의 절반 수준으로 납품하겠다는데도 LG마이크론 측은 요지부동이었어요. ‘언제까지 일본에 끌려 다닐 거냐’며 한 라인만 깔고 제대로 가동하지 않으면 돈을 안 받겠다고 했죠. LG마이크론을 설득하는 데만 3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납품한 에처의 수율(생산한 제품 중 합격품의 비율)이 97∼98%로 일본 제품(92%)보다 훨씬 좋게 나왔다.

 

2004년은 마 사장에게 잊지 못할 해다. 삼성석유화학이 충남 대산 공장을 증설하면서 발주한 PTA 생산 설비를 제작·납품하게 된 것이다. 이도 역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티타늄 PTA 생산설비도 일본에서 거의 수입했던 장비다. 당시 일본 업체가 낸 견적은 76억원. 그는 23억원에 해 주겠다고 견적서를 냈다. 재료 가격과 인건비를 따져도 40여억원이 필요했지만 무리한 가격을 써낸 것이다. 삼성석유화학도 그 가격에 제품을 만드는 게 무리라고 만류했다. 생산 설비를 만들 울산 공장도 짓고 있어 여유가 없을 때였다. 손해 나는 일을 따 왔다며 임직원들의 불만도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단일 사업 비용으로만 따지면 엄청난 손해지만 이 프로젝트를 성공하면 세계의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될 것”이라며 “20억원을 줄 테니 1년 안에 우리를 그만큼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직원들을 설득했다. 4개월 뒤 무사히 납품하자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이 “국산화해 줘서 고맙다”며 그의 손을 잡았다. 이후 호주 조드엔지니어링이 3000만 달러 규모의 니켈 제련 설비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해 오는 등 세계 곳곳에서 발주가 이어졌다. 덕분에 2003년 275억원이던 매출이 2006년 1173억원으로 뛰었다. 이제 해양플랜트용 장비와 발전 설비 제작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이를 위해 2011년 완공을 목표로 경남 온산 국가산업단지에 새 공장을 짓기로 했다.

 ‘좋은 제품을 만들고 애프터서비스도 확실한 회사’가 그가 생각하는 티에스엠텍의 모습이다. 2004년 LG화학에서 수주한 반응기를 만들 때의 일이다. 열처리를 잘못해서 실금이 생겼다. 실금을 긁어내고 보수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원래 수명의 30∼40%밖에 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다시 만들기로 했다. 그는 LG화학 측에 납기가 늦어지면 지체 보상금을 주겠다며 모두 폐기 처분하고 새로 만들어 보냈다.

 그는 자신을 ‘노조위원장’이라고 한다. 그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이 바로 직원이라는 뜻이다. 회사의 정년은 60세. 그러나 직원이 원하면 5년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이 손잡고 출근하는 회사, 아버지가 아들에게 추천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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