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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하듯 “미래에셋 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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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2일 오전 11시20분 미래에셋증권 압구정 지점. 주부에서 머리가 희끗한 노인까지 20여 명이 ‘번호표’를 뽑고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이광헌 지점장은 “추석 연휴가 지나고부터 하루 200~300명의 고객이 찾는다. 특히 오후 2~3시 사이에는 100여 명이 다녀간다”고 귀띔했다.

이날 김모(68·서울 압구정동)씨는 40여 분을 기다려 미래에셋 펀드 8개에 가입했다. 김씨는 “인근 저축은행에서 2000만~5000만원씩 예금을 찾아 1억원을 만들어 왔다”며 “지금 믿을 곳은 미래에셋뿐”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설명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강남 가서 점심 한번 먹어 봐요. 절반은 펀드 얘기하는 사람이고, 그중 또 절반은 ‘미래에셋 박사’예요. (미래에셋이 운용하는) ‘디스커버리 펀드’ 하나 갖고 있지 않으면 핀잔 듣기 일쑤입니다.”

미래에셋 압구정 지점엔 하루 20억~30억원의 자금이 새로 들어온다. 이르면 연말께 이 지점의 수탁액이 5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압구정 일대 증권사는 물론이고 시중은행보다 1000억원 이상 많은 것이다.

‘미래에셋 쏠림’ 현상은 경쟁 증권사는 물론 은행 창구에서도 볼 수 있다. SC제일은행 압구정역 지점의 박정미 차장은 “펀드 가입 고객 중 3분의 2 이상이 미래에셋을 찾고 있다”며 “고객들이 무슨 물건 사듯이 ‘미래에셋 있어요?’라고 묻는다”고 전했다. 요즘 펀드시장에선 새로 들어오는 자금의 60%가 미래에셋 상품으로 몰리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자 K, S, N 등 자산운용사를 자회사로 둔 시중은행에선 고객들의 미래에셋 펀드 가입을 은근히 견제하는 분위기다. 기자가 K은행 압구정동 지점에 들러 해외펀드에 가입하려 한다고 하자 S운용사 상품을 먼저 내놓았다. 이 은행의 한 직원은 “고객들이 미래에셋만 고집하는 통에 다른 회사 상품을 추천하기가 민망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같은 날 오후 2시 미래에셋 왕십리 지점. 문을 연 지 두 달밖에 안 되는 곳이다. 그러나 66㎡(20평) 남짓한 사무실은 투자자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김용찬 지점장은 “직원 네 명이 상담을 하는데 전화 받을 틈도 없다”고 말했다. 같은 건물에 입주한 D증권사 객장에 가보니 개인투자자 서너 명이 앉아 썰렁한 모습이었다.

직장인 손모(35·서울 상계동)씨는 아파트 중도금 낼 돈을 가지고 온 케이스. 중도금은 따로 대출을 더 받기로 했다는 손씨는 “증권사 영업사원도 만류했지만 지금은 펀드가 돈 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미래에셋펀드에 돈을 넣으면 단기간에도 고수익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방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경기도 양평에 거주하는 신모(35)씨는 지난달 처음으로 D증권 영업점에서 미래에셋 ‘차이나 솔로몬 펀드’에 가입했다. 그는 “주변에서 하도 미래에셋이 좋다고 해 사실 내용도 잘 모르면서 월 20만원씩 불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힘을 받은 미래에셋은 몸집을 키우며 대대적인 판촉 활동을 벌이고 있다. 경력 사원을 적극 채용하고, 지점을 확대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의 영업점은 올 초 71개에서 10월 말 현재 110개로 늘었다. 영업사원은 같은 기간 498명에서 872명으로 갑절 가까이 늘었다.

“하루 1조4000억원 모집. 인사이트 펀드- 강력 추천합니다.” 미래에셋의 영업점에서 자사 고객들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다. 미래에셋은 영업직원들에게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하면서 이 펀드 판매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인사이트 펀드는 국내든 해외든, 주식이든 채권이든 가리지 않고 투자하는 ‘자유형’ 펀드다. 전문가들이 펀드 성격이 공격적이어서 제대로 알고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10월 31일 설정 당일에만 1조6000억원어치가 팔렸다.

이런 미래에셋 신드롬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일단 실적이 주는 신뢰감이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미래에셋의 펀드 수익률이 압도적으로 좋아지는 바람에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자기 브랜드로 해외에 진출해 좋은 성적을 거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으로 돈이 몰리다 보니 미래에셋이 사들이는 주식들이 더 크게 오르고, 그러다 보니 돈이 또 몰리는 순환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쏠림 현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증권사 사장은 “쏠림 현상이 조금만 더 심화되면 미래에셋 자체가 시장이 된다”며 “이는 미래에셋이 사면 주가가 오르고, 팔면 내린다는 의미로 증시와 미래에셋 모두에 큰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립대 윤창현(경영학) 교수는 “미래에셋 신드롬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쏠림 현상이란 게 그 자체로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자칫 미래에셋의 운용 수익률이 좋지 않아 펀드 환매가 줄을 잇는 ‘펀드런(fund-run)’이 일어날 수 있으며, 그러면 증시 전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희성 기자
bud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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