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로본우리동네>과천시-관악산아래 둥지튼 士大夫마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누구도 과천에 새도시가 형성되리라 생각하지 못한 시절이었다고하겠다.그의 예언이 있은지 30년이 지나 정부는 수도 서울의 인구분산책으로 과천에 제2정부종합청사를 건립하고 오늘의 전원도시를 탄생시켰다(86년 시로 승격).
예부터 과천의 鎭山(우리나라 마을의 중심 산)은 관악산이다.
다시 말해 관악산을 중심축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뜻이다.
관악산에서 우면산으로 연결되는 서쪽 축과 매봉(鷹峰)에서 淸溪山.玉女峰과 九龍山으로 연결되는 동쪽 능선 사이로 양재천이 흘러 동서 양편으로 대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 좀더 풍수적 논리로 살펴보면 관악산을 뒤에 두고 있는 시청일대는 동남향(乾坐)으로 대지가 형성되었고 물(양재천)은 동남쪽(巽方)에서 보이기 시작해 북동쪽(癸丑方)으로 빠져나가고있다. 이런 맥의 흐름을 일러 五行의 金局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반대편 청계산과 매봉을 뒤에 두고 있는 지역은 서북향(巽坐)으로 역시 물은 반대편과 같은 방위로 빠져나가고 있다.이를 일러 木局이라고 한다.
오행의 관계를 보면 두 지역은 金克木(금이 목을 이긴다)의 형세를 이룬다.
서로 상극의 형세지만 알고보면 변화의 조짐이 여기있음을 뜻한다. 나무(목)가 다 자라면 도끼(금;쇠)가 있어 이를 쓸모있는 목재로 다듬어야 한다.金木相成의 조화가 여기 숨어있다.
요약하면 과천은 동서가 높고 남북이 낮아 전형적인 行舟形局(배가 가는 모습)을 이룬다.
여기에다 물이 남쪽에서 나와 북쪽으로 흐르니 이런 지역은 下元甲子(1984년)이후에 본격적인 변화가 오게 되어 있다.아마이선평은 이같은 논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선박에서 중요한 부분은 역시 기관이 있는 곳이다.과천에서 이에 해당하는 곳이 어딜까.
우리는 관악산의 정상에서 매봉을 잇는 중심선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향교말을 축으로 종합청사.1단지와 반대편 매봉 밑 구리안에서 아랫배랭이 안쪽이 이에 해당한다.
시청.종합청사 지역은 관악산 정상에서 세 봉우리를 내려와 金星(반원 형태의 산)으로 대지를 펼쳤다.이어 탐랑성(붓끝 모습)이 主山을 이룬다.
이런 경우 흔히 장군대좌형으로 볼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장막을 치고 앉아있는 귀인」(帳下貴人)의 모습이다.뒤의 관악산 여러 봉우리와 앞의 매봉이 문필봉을 이루고 우면산과 청계산 줄기들이 金.銀帶砂를 이루니 가위 士大夫가 살만한 곳이다.
특히 찬우물 고개를 분수령으로 관악산과 매봉에서 흘러오는 물들이 정부청사 앞에서 만나니 이곳은 경제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일대에 상업지구가 형성된 것이나 제2종합청사에 경제관련부처가 입주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하겠다.
신도시 개발에 있어 한가지 아쉬운 점은 도로의 축선이 亥壬(북에서 15도 서쪽 방위)과 甲寅(동에서 15도 북쪽 방위)으로 그어지다보니 음양이 혼합돼 있는 점이다.
또 이 도로선을 따라 주택을 건설,동남향을 취하다보니 앞의 매봉이 가로막고 있다.案山이 너무 가까우면 위압감을 당하거나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과천에서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가 들어선 지역은 성격을 좀 달리한다. 이곳은 과천 本局에서는 외곽지역으로 독자적인 형국을 이루고 있다.청계산을 주산으로 서향판에 마치 참외넝쿨과 같은 형국을 이뤄 문자 그대로 맑은 시내산(청계산) 아래서 놀만한 곳이다. 또 옥녀봉 아래 경마장은 과천 본국의 물 빠져나가는 곳을 다져주고 있어 역시 바람직한 터에 자리했다.
행주형국은 지나치게 짐을 실어서는 배가 가라앉는다.현재 이상의 개발이 이루어질 때 그런 위험을 자초하게 된다.남태령도 더넓혀서는 안된다.남태령 돌산의 빛깔이 희어지면 기가 쇠잔해진다는 증좌다.
도움말=柳鍾根 이수학회 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