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여건 속 피어난 고사리 손 ‘기적의 화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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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형일초등학교 관악합주단원들이 지난달 30일 교실 3개를 틔워 만든 종합발표실에서 홍은진 교사의 지휘에 따라 연습하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자, 17마디부터 감정 살려 하~나 둘, 시~작!”

홍은진(30) 교사가 지휘봉을 들고 신호를 보내자 초등생 60여 명은 일제히 관악기를 입에 대고 연주를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홍 교사가 악보대를 두드리며 “반주음이 너무 크다”며 중단시킨다. 연주와 중단은 수시로 반복됐다.

지난달 30일 구미시 형곡동 형일초등학교 4층 종합발표실에서 있은 관악합주단의 연습 모습이다. 홍 교사는 “합주단은 수업 시작 전 매일 오전 8시부터 50분 가량 연습한다”고 말했다.

1998년 5월 특기적성교육으로 창단된 이 학교 관악합주단(단원 63명)은 전국 제일의 실력을 자랑한다. 지난해 9월에는 국내 최고 권위의 대회인 대한민국 관악경연대회에서 초·중·고 74개 팀 중 최고상인 대상과 함께 초등부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늘 대상을 차지하던 고교 관악부를 제치고 받은 것이어서 당시 ‘고사리 손의 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합주단은 창단 이듬해인 99년부터 지금까지 한 차례도 놓치지 않고 이 대회에서 상위 성적을 거두고 있다. 최규석(62) 교장은 “기업과 관청까지 나서 합주단을 구미의 자랑거리로 키워 놓았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악기 사라고 2000만원 ‘선뜻’=합주단은 현재 방음 연습실이 없고 운영비도 대기 어렵지만 열성적인 지도와 그들을 돕는 기업체와 교육청·구미시청 등이 있었다.

학교 측은 관악부 활동을 최우선 지원한다. 지난달 25일 있은 창단 10주년 연주회 때는 교직원 50여 명 전원이 역할을 나눠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했다. 방학 때는 단원을 군 부대에 보내 군악대의 지도를 받게 한다. 지휘를 맡은 홍 교사는 매일 수업 전 50분, 방과 후 1시간 30~40분씩 합주를 지도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장시간 꾸준한 연습이 연주 실력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2004년 4월 학교와 자매결연한 LG필립스LCD는 대회·행사 때마다 이동용 버스를 지원한다. LG는 또 2004년 악기구입비 2000만 원을 지원했다.

학부모도 학생 뒷바라지에 열심이다. 행사·대회 때 악기를 들어 주며 인솔하고 간식·음료수 등을 준비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지난 5월 일본 초청 공연 때는 구미시가 2500만 원, 경북도교육청이 1000만 원, 구미교육청이 500만 원을 지원했다. 경북도교육청은 올 봄 악기 교체비 3600만 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여전히 어려움 있어=단원들이 사용하는 연습실은 교실 3개를 틔워 만들었다. 자연히 인근 주민들에게 소음 피해를 준다. 또 단원들이 특기적성 교육으로 월·수요일 두 시간씩 외부 강사의 레슨을 받고 있어 학부모는 월 7만 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교육청 지원으로 학부모가 월 2만 원 정도 특기적성 교육비를 내는 경남 일부 학교와는 대조적이다. 학교 측은 “이 부담은 단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여건이 된다”고 밝혔다.

연간 1억 원 이상 드는 운영비와 각종 행사비도 부담이 되고 있다. 수백만 원씩 하는 관악기의 수명이 3~4년으로 짧고 많은 단원을 운영하다 보니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다. 학교 측은 연간 1000~2000만 원을 지원할 수 있는 정도의 예산뿐이다. 이 때문에 최 교장은 대회·행사 때마다 교육청·시청 등지를 찾아다니며 지원을 호소한다.

단원들이 특기를 살려 연주를 계속 할 수 있는 중학교가 없다는 점도 학생·학부모의 아쉬움이다. 단원들은 중학교 때 악기를 손에서 놓았다가 음악 특기생을 뽑는 김천여고·경북예술고를 진학하곤 한다.

학부모 신숙경(41)씨는 “그동안 기업과 각급 기관이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관악부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예산 지원 등 전향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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