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北美전문가회의-평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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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平壤 전문가회의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연락사무소 개설문제를 다루게 된다.베를린회담이 경수로.대체에너지 지원,핵폐연료봉 처리문제등 기술적인 문제를 다룬다면 평양회담은 정치적인 사안을 다루는 셈이다.
연락사무소 부지선정,입주건물 규모.임대조건.사무소직원,가족들의 숙소와 의료지원을 비롯한 생활여건 보장문제,통신시설문제등 실무문제들을 논의하게 된다.
의제가 실무문제에 머물기는 해도 미국 정부 대표가 처음으로 평양에 들어가 협상을 벌인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의미는 특별하다. 美정부가 국무부 한국과의 린 터크 副과장을 수석대표로 파견한 것도 이런 정치적 의미를 줄이고,실무협상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한국정부는 연락사무소 설치를 남북대화와 연계할 것을 요구하고있고,클린턴 美대통령도『한국과 보조를 맞추겠다』고 약속하고 있어 사무소 설치 시기문제는 23일부터 열리는 제네바 2차회의에가야 다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北韓외교부는 회담을 하루 앞두고 北-美 평화협정체결을 촉구해北-美회담에서 평화협정문제가 최대의 이슈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있다. 외교부 담화는『朝-美회담에서 평화협정체계 문제를 토의하고 합의하는 것은 현시기에 당면한 절박한 문제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미 이달초 외교부副부장 宋浩京을 北京에 보내정전위에 나와있는 중국군을 철수시키고,「평화보장체계」수립에 대한 지지를 받아내는등 이러한 주장을 제기할 준비를 해왔다.
북한과 미국이 수교하게 되면 북한이 평화협정 문제를 다시 물고 늘어질 것으로 예상해왔다.전쟁상태를 정리한 뒤 정치.외교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 정상적인 순서이기 때문이다.3단계 1차회담에서도 회의 초반에 잠깐 이 문제를 거론했었다.
美國은 갈루치 차관보가『美-北간에 평화협정이 필요하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해 당장 이에 응할 뜻이 없음을 밝히면서도 상당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한국정부는 한반도의 휴전상태를 보장할 당사자는 남북한이라는 점에서 평화협정이 남북한 사이에 체결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북한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정전협정이 실효되면 현 휴전상태를 보장해줄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韓昇洲외무장관도 미국측에 평화협정은 남북한 당사자가 해결해야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워런 크리스토퍼 美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아직 멀리 떨어져 있는 문제』라면서도『한국측과 협의 아래서만 할 수 있는문제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해 한국측과의 협의하면서 미국이 나서 협의할 수 있다는듯한 발언을 했다.북 한이 외교부대변인 담화를 내놓은 것도 크리스토퍼장관의 이같은 발언에 고무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李洪九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10일『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은 전쟁종결을 의미,전쟁의 책임문제와 연결된다』고 말하고『이 문제가 美國에서 공식제기될 경우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게 돼있다』고 말해 북한의 전쟁책임론을 제기했다.
李부총리의 발언은 그시점이나 내용에서 북한과 미국이 이를 논의하는데 쐐기를 박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평화협정을 끈질기게 제기하는 의도를 놓고 美軍 철수를노리는 것이란 해석과 경제개방을 위해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을 일단 제거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있다.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미 공세적 對南정책에서 방어적 자세로 바뀌었으며,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美軍철수를 바라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더구나 미국이 동북아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포기하고 물러날 구실을 만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제네바 北-美합의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무기 불사용및 불위협에 관한 보장을 제공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갈루치차관보가『광범위하고 철저한 핵문제 해결이나 對북한 관계개선에는 美-北간 어떠한 평화협정이 필요하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어떤 이름으로건 정치.군사적인 성격의 문건채택 자체는 불가피하다.
북한이 외교부 담화에서 『朝-美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하고 우리(北)에 대한 핵위협을 해소하는 견지에서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문건의 연장선에서 평화협정을 추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金鎭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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