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대학생 캠페인단 '위키' 날개를 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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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가 80년대 학번들이라면 요즘 대학생들은 ‘88만원 세대’로 불린다. ‘88만원 세대’란 대한민국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라고 해서 나온 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인 대학생들로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 투표권을 행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학점 관리, 아르바이트, 취업 준비 등 현실적으로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대학생들에게 이번 대통령 선거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선거가 50일도 채 남지 않은 1일 서울 신촌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은 피켓을 든 대학생들의 함성 소리로 가득했다. 이들은 오는 대선에서 되도록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하도록 홍보하는 100여명의 전국 대학생 캠페인단 ‘WEKI(위키)’. 이들에게 대선은 딱딱한 정치 행사가 아닌 하나의 축제다. 위키는 ‘we korea impact’의 약자로 유권자 중심의 축제가 되도록 하자는 온오프 캠페인 활동을 전개할 대학생들의 별칭이다.

이들도 여느 대학생처럼 고단한 ‘88만원 세대’지만 이들에게 이번 대선은 그 어떤 선거보다 중요하게 다가온다. ‘위키’ 멤버 박준홍(연세대 경영학과ㆍ23)씨는 “한국은 현재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기 때문에 지도자를 뽑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며 “피켓을 든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뭐 하냐’고 물을 때는 쑥스럽기도 하지만 이번 대선의 중요성을 꼭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위키’는 신비 전략 형식을 취한다. 피켓에는 ‘투표에 꼭 참여하자’는 식의 상투적 표어가 없다. 대신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발전하자” “세상을 향한 외침” 등의 아리송한 메시지가 적혀있다. 최지윤(서울대 경제학부ㆍ24)씨는 “정치는 흔히 사람들이 딱딱하게 여기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슨 이벤트인지 잘 노출하지 않고 호기심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티저’ 광고 형식을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지나가는 학생들은 도서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있는 이들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일이냐”며 물어오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오던 허혜림(연세대 통계학과ㆍ22)씨는 “대학생들이 선거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며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도 막상 투표는 다들 하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대부분 특정 후보가 너무 좋아서 그 후보를 찍는다기 보다 다른 이들과 비교해 조금 나은 대안 차원에서 찍는 정도”라고 말했다. 이희선(연세대 경영학과ㆍ22)양은 “피켓을 든 이들을 보며 처음에는 데모하는 사람들 정도로 생각했다”며 “대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젊고 발랄한 대학생들이 대선 후보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렸다. ‘위키’ 멤버 원창희(연세대 경영학과ㆍ21)씨는 “요즘은 단과대별로 경영대는 누구, 사회과학대는 누구 식으로 특정 대선 후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2007년은 어떻게 보면 2002년보다 정치적으로 후퇴해 있는 듯 하다”며 “후보 검증이나 경선도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명우(가톨릭대 중국학ㆍ25)씨는 “이번 대선을 바라보는 대학생의 시각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며 “대선 후보에 정책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투표에 대한 참여 의지만큼은 확고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나가던 대학생 양해근(연세대 사회과학계열ㆍ20)군은 “생애 첫 투표인 만큼 고민하고 후보를 찍겠다”고 말했다.

‘88만원 세대’들이 대통령 후보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 원창희(연세대 경영학과ㆍ21)씨는 “정책이나 선거 관련 용어에서 영어를 빼달라”며 “‘오픈 프라이머리’ 등 너무 어려운 용어가 많아 정치가 어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신현석(연세대 정치외교학과ㆍ26)씨는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선거를 유쾌한 콘서트 형식으로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한 학생은 “후보들은 꼭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만 대학생들과 같이 밥먹는 ‘액션’을 하더라”며 “평소에도 젊은이들과 교류해달라”고 꼬집기도 했다.

‘위키’는 캠페인 첫날인 1일을 시작으로 대선 하루 전날인 다음달 18일까지 이화여대, 중앙대, 숙명여대 등 서울 시내 10여 개 대학교와 삼성역, 선릉역 등 직장인들이 많이 모이는 지하철역 부근을 돌며 피켓 캠페인을 비롯해 게릴라 결혼식, 화장실 기표소 이벤트 등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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