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에는 22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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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방문객만도 9만 명. 선선한 가을 공기가 완연한 청계천 물길에 시민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청계천은 어느새 빌딩 숲에 둘러싸인 도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처이자, 연중 크고 작은 공연들이 줄을 잇는 볼거리 가득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한적한 오후엔 야트막한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예스런 풍치마저 든다.
헌데 혹시 알고 있는가? 모전교에서 시작돼 고산자교에 이르는 청계천에는 무려 22개의 다리가 있다. 이 중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 세운교, 새벽다리, 나래교, 맑은내다리, 두물다리는 보도용 다리이고, 나머지 다리들은 차도로 쓰인다. 그 22개의 다리를 사진으로 살펴보았다.

1. 모전교: 청계천 다리의 시작점으로 종로구 서린동과 중구 무교동 사이의 네거리에 있던 청계천의 옛 다리이다. 부근 길모퉁이에 과일을 파는 모전(毛廛)이 있다 하여 ‘모전다리’ 즉 ‘모전교’라 불렀다.

2. 광통교: 원래 지금의 서린동 124번지 부근에 있었던 다리인데 지금의 위치로 옮겨진 다리다. 위광통방에 있는 큰 다리였으므로 처음에는 대광통교라 했다. 예로부터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도성의 많은 남녀가 이 곳에 모여 답교(踏橋)놀이를 하던 곳으로 유명했다.(12m 길이로 다리들 중 가장 짧다.)

3. 광교: 광통방에 있던 크고 넓은 다리라는 의미에서 예부터 광교라 일컬어졌으며, 현재 광교 사거리가 이 위치에 해당한다.

4. 장통교: 관철동과 장교동을 잇는 다리로 원래 중구 장교동 51번지와 종로구 관철동 11번지 사이 청계천에 놓였던 다리이다. 이 다리 근처에 ‘장찻골’로 불리는 마을이 있었다. 그래서 이 부근에서는 ‘장찻골다리’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원명은 중부 장통방에 있던 다리이므로 장통교, 혹은 줄여서 장교라고도 했다.

5. 삼일교: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는 독립선언을 한 뒤 전국에서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는 시위운동을 벌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 거리를 삼일로라 했고, 다리는 삼일교라 불렀다.

6. 수표교: 수표교가 놓여진 것은 1420년(세종2)으로 당시 이곳에 마전(馬廛)이 있어서 마전교라 불렀으나, 1441년(세종 23)에 다리 옆에 개천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서 수표석(水標石)을 세운 이후 수표교라고 이름붙였다. 수표교의 원형은 1959년 청계천을 복개할 때 장충당공원으로 옮겼다.

7. 관수교: 관수교(觀水橋)는 1918년 일본에 의해 지금의 청계 3가 사거리에 놓여있던 다리이다. 이곳에 청계천 준설사업을 위한 준천사가 설치되어 있었고 준천사에서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옛 교량 명칭으로, 현 관수동에 위치해 있다.

8. 세운교: 현 세운상가에 인접하여 세워진 다리로, 세운상가의 명칭을 따라 세운교라 하였다. 특별히 세운(조명)상가의 특성을 활용해 빛을 표현하고 있다.

9. 배오개다리: 현 종로4가 네거리에 배오개(梨峴)라는 고개가 있어 이름 지어진 배오개길이 있다. 그 길 이름에서 유래된 다리가 배오개 다리이다. 특별히 배오개길을 넘는 사람들이 만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0. 새벽다리: 방산시장 앞에 위치한 새벽다리는 시장 천막의 모양을 이미지화했다. 동대문 재래시장의 역사성과 향수를 연출하고자 세운 다리다.

11. 마전교: 근처에 있는 옛날 교량의 이름으로, 다리 부근에 우마(牛馬)를 매매하는 마전(馬廛)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12. 나래교: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의 다리로, 동대문 의류상권의 중심지역에 위치한 다리로 인근 동대문 의류상권이 세계 패션 1번지로 비상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

13. 버들다리: 과거 오간수문 상류에 왕버들이 많았다는 데서 인용한 다리로 사교에 따른 보행자 동선을 위해 차도와 보도를 분리하고 파골라를 설치해 도심 속의 정원을 연출했다.

14. 오간수교: 동대문에서 을지로 6가로 가는 성벽 아래 청계천 6가에 있던 다리로 원형은 찾아볼 수 없다. 홍예문(紅霓門)으로 다섯 칸으로 나뉘어서 ‘오간수다리’ 또는 ‘오간수문’ 이라 하였다.

15. 맑은내다리: 맑은내는 청계천의 순 우리말이다. 동평화상가 앞에 위치한 다리로 나비의 힘찬 비상을 아치구조와 크로스 케이블로 조화시켜 패션 중심지로서의 힘찬 도약을 연출한다.

16. 다산교: 조선중기 실학자 정약용의 호를 붙인 도로인 다산로에 인접한 다리라 하여 ‘다산교’라 명명했다.

17. 영도교: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귀양 갈 때 그의 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이곳까지 나와 서로 영영 이별했다. 영도교는 영이별다리 혹은 영영건넌다리라고 불리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18. 황학교: 옛날 이곳 논밭에 황학(黃鶴)이 날아왔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19. 비우당교: 조선 세종 때 대표적인 청백리로 알려진 하정 유관선생. 그의 청렴함은 비가 오는 날에도 방안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비를 피했을 정도라 하여 그의 집을 비우당(庇雨堂)이라 하였다. 비우당교는 이 집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46.6m로 가장 긴 다리다.

20. 무학교: 조선 개국 초에 이 도로의 종점지역인 왕십벌 지역에 도읍을 정하려고 태조 이성계를 따라 지상을 보러 다니던 무학대사에서 유래한 무학로. 그 길의 이름을 인용하였다.

21. 두물다리: 다리 위치가 과거 청계천 지류가 합류되던 지점으로 두 개의 물이 만나는 다리라는 의미이며 다리모양도 서로 만나는 형상이다.

22. 고산자교: 조선시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호를 따서 지은 다리다. 인근에 ‘고산자로’가 있다.

자료&사진= 서울특별시 시설관리공단

최경애 객원기자 doonge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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