任那日本府 단순 외교사절불과-인제大 이영식교수 논문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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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韓.日고대사의 주요 쟁점이 돼온「任那日本府」는 倭가 가야국에파견한 가아계인으로 단순히 외교사절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이같은 주장은 인제대 李永植교수(40.한국사.가야문화연구소장)가『역사비평』가을호에 게재한「임나일본부를 재해석한 다」는 논문을통해 제기한 것으로 그동안 임나일본부가「일본의 가야 통치기관이었다」는 일본측 주장과「백제의 軍사령부였다」는 한국측 주장은 물론「임나 자체가 한반도와는 무관한 백제.신라의 일본내 分國이었다」는 북한측 주장과도 다른 것이 어서 주목된다.
李교수는『그동안 임나일본부에 대한 한.일 양국의 연구는「일본학계의 막연한 선입관과 한국학계의 감정적 반발」로 일관됐을 뿐가야제국의 자체적 발전이나 이해관계를 도외시하는 바람에 객관적분석이 결여됐다』고 주장했다.
李교수는 임나일본부의 출전인『日本書紀』의 관련기사에서 조세징수,力役이나 군사의 동원,일방적인 정치적 강제 등 왜나 백제가가야제국을 지배했음을 나타내는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그는 또 문헌이나 최근까지 발굴된 고고학 적 자료를 통해 보더라도 倭人이 집단적으로 거주했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는 점을 들어 임나일본부는 야마토(大和)前代(645년 이전)에 「一回性의 사신」으로 운용된 미코토마치(御事持)와 같은 것이라고주장했다.
李교수는 문헌상 임나일본부의 실체인 왜의 사신들은 이쿠하노오미(的臣),키비노오미(吉備臣),카와치노아타히(河內直)등 3명이었으며 이들은 모두 가야에서 일본열도의 카와치(현 오사카일대)와 키비(현 오카야마일대)지역으로 이주한 씨족이거 나 가야문화에 익숙한 사람들로,야마토정권이 이들 지역을 통합한 뒤 지리상동쪽 방어선의 안정과 가야등 선진문물 수입 창구의 유지를 위해이들을 파견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李교수는 또 가야제국이 일본부를 자기들측에 오래 붙여둔 것은그렇게 함으로써 백제와 신라에 대해 왜의 세력이 배후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 외교에서 유리한 입장을 지켜나가기 위한 고려라고 보고 있다.
李교수는 그러나 이들이 왜나 백제편에 서지 않고 가야제국의 편을 든 것은 자신들의 출신연고가 가야지역인데다 장기간 체류를함으로써 왜와의 관계가 소원해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李교수는 이에 따라 임나일본부의 외교활동이 前期에는 親백제.
反신라,後期에는 親신라.反백제적인 입장을 띠고 있었는데 이는 가야제국과 백제.신라간의 세력판도와 일치하는 것으로 임나일본부의 활동이 왜나 백제가 아닌 가야제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李晩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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