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조백일장10월] “맺음과 풀어짐 … 시조의 양면성이 좋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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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축하 인사를 건네자 담담하지만 환한 웃음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건너왔다. 그는 “기다림의 초조함이 반가운 소식을 만나 기쁨과 여린 긴장감으로 변주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 쓰는 사람다운 답이다.

10월 장원 김동호(50·사진)씨는 중앙 시조백일장과 인연이 깊다. 93년 도전을 시작해 올해로 14년째. 그동안 여러 차례 입선해 연말 장원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던 그다. 긴 인연에 대해 묻자, 김씨는 “남이 앉을 자리에 제가 기를 쓰고 나서는 것만 같다. 부끄럽기도 하고 고약한 집착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투고를 자제하려고 나 자신과 싸우기도 한다”고 대답했다. 잇따른 등단 실패에도 꺾이지 않는 그의 시조 사랑이 배어 나온다.

김씨가 시조를 접한 것은 20여년 전. 그는 “왠지 모르게 시조가 좋아 늘 그 언저리를 맴돌았다. 특별히 작법을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시조 작품선에 실린 좋은 작품을 읽고 따라 쓰면서 익혀왔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선명한 이미지가 특징이다. 장원작 ‘쑥부쟁이’는 시각적 색채를 청각적 시어로 그려냈다. 그는 “내가 사는 강원도는 산이 좋다. 얼마 전 등산하다 지천으로 핀 보랏빛 꽃을 만났는데 그 꽃이 마치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때의 가슴 뛰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현재 강원도 인제 원통중학교에서 사회 교과를 가르치고 있다. 생업이 있기에 집중적인 시작(詩作) 시간을 가질 수 없지만, 그는 언제 어디서나 시조를 생각한다. “아! 하고 시상이 떠오르는 순간 메모를 해둔다. 틈틈이 가지를 치고 가다듬는다.” 오래 졸여낸 듯 간결한 그의 시구는 오랜 퇴고를 거쳐 나온 것이다.

시조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정형시의 단단한 틀 안에 녹아든 자유로움이랄까…시조는 하나의 형식 속에 맺음과 풀어짐이 공존한다. 그런 양면성을 지녔기에 시조가 좋다”고 말했다. 등단의 영예와 상관없이 김씨는 정년퇴임을 즈음해 시조집을 엮어낼 생각이다.

이에스더 기자



심사위원 한마디  명징한 이미지 … 단어 다루는 솜씨 빼어나

시조는 압축과 절제를 늘 강조한다. 형식에 시상을 앉힐 때부터 필요한 기본기이기 때문이다. 시상에 꼭 맞는 하나의 단어도 그 과정에서 찾게 된다.

이 달의 ‘장원’으로 김동호씨의 단수 ‘쑥부쟁이’를 뽑는다. 이 작품은 이미지와 언어에 군더더기가 없고 명징하다. ‘쑥부쟁이’를 ‘보랏빛 이명’으로 은유한 초장부터 신선하다. 거기에 ‘쟁쟁쟁’이라는 밝은 느낌의 소리말과 ‘너, 너, 너, 너’라는 반복 호명 그리고 종장의 ‘높은 음 환청’ 등을 배치한 솜씨가 빼어나다. 배행도 시각적 효과를 높인다. 앞으로는 작품의 폭에 주력하길 권한다.

‘차상’ 민은숙씨는 ‘획’의 비상을 통해 추사의 정신을 담아낸다. ‘독필’이 자극한 시상을 ‘소나무’에 응집하며 추사의 높은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그런데 꼭 필요치 않은 구절은 시적 긴장을 해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본래 네 수이던 것을 세 수로 압축한 까닭과 효과를 살펴보기 바란다.

‘차하’ 김지송씨는 ‘부들’의 모습을 통해 생리를 충실히 그리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느낌이 많아 시상의 이완을 초래한다. 우선 압축으로 밀도를 높이며 새로움을 찾아야 할 듯싶다. 그것이 바탕을 이룰 때 ‘비그이’ 같은 어휘력도 돋보일 것이다.

형식을 매끄럽게 다듬은 응모작이 늘고 있다. 그런데 공소한 게 많아 아쉽다. 형식에 익숙해진 단계에서는 나만의 발견을 담아내는 도약이 필요하다. 치밀한 관찰과 함께 비유, 이미지 등 미적 의장에 대한 고민도 더 깊이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과 새로움을 열어가는 것이다.

응모작 수준이 매달 달라 좋은 작품도 다음을 기약할 때가 있다. 구월에 아쉽게 내려놓았던 응모자(김종열·류상산·배종민씨)가 보이지 않는다. 꾸준한 응모와 도전이 자기 갱신에 도움이 된다. 새로움에 대한 기투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영재·정수자>



■응모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 매달 말 발표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매달 장원·차상·차하에 뽑힌 분을 대상으로 12월 연말장원을 가립니다. 연말장원은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자(등단자격 부여)의 영광을 차지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겐 각각 10만·7만·5만원의 원고료와 함께 『중앙시조대상 수상작품집』(책만드는집)을 보내드립니다. 응모시 연락처를 꼭 적어주십시오.

■접수처=서울 중구 순화동 7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10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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