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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기상이변 탓만 할 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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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올해 노벨평화상은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에 돌아갔다. 인간이 기후 변화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고 이를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한 결과다. 고어는 환경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에서 최근 지구의 평균온도가 명확하게 증가하고 있고, 사상 최고기온이 해마다 경신되면서 태풍의 위력이 점점 세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기상이변으로 해마다 엄청난 재산과 인명 피해가 생겨나고 있다. 9월 제주도를 강타한 태풍 ‘나리’는 소형인데도 우리에게 상상을 초월한 상처를 남겼다. 하루 500㎜ 이상의 집중호우를 쏟아 부으면서, 13명의 인명 피해가 나고 1600대의 자동차가 침수되거나 떠내려가는 등 2000억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냈다. 하지만 이번 태풍의 경우 천재지변이라고만 할 수 없는 측면이 많다.

제주도는 화산섬이어서 토양의 물 빠짐이 좋고, 한라산을 기점으로 해안까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비가 많이 오더라도 자연스럽게 바다로 잘 빠지기 때문에, 예전에는 아무리 큰 비가 와도 주택이나 농경지가 침수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중산간에 골프장이 수없이 들어서고 무분별하게 도로가 개발되면서 기상이변에 대한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제주도에는 현재 20여 개의 골프장이 운영 중이고, 건설 예정인 것까지 합치면 39개나 된다. 지하수 저장고 역할을 하던 울창한 곶자왈(숲)에 골프장이 들어서게 되면 물을 머금을 수 있는 보습력은 수십 분의 일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골프장에 내린 빗물은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기 때문에 하천이나 저지대로 배출되는 빗물의 양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진다. 반면에 골프장 잔디는 이틀에 한 번씩 1000t씩의 물을 뿌려 줘야 하므로, 제주도는 수많은 골프장 때문에 집중호우와 극심한 가뭄에 대단히 취약하게 된다.

그리고 제주도는 그동안 많은 도로를 확장하면서 곡선 도로를 직선화시키고, 높은 지역은 깎고 낮은 지역은 메워서 도로를 평탄화했다. 그리하여 전국 제일의 도로 천국이 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 이번처럼 집중호우가 내리게 되면 도로(道路)가 수로(水路)로 변하고, 자연스럽게 잘 빠지던 물길을 가로막아 상습 침수지역을 많이 만들어 놓은 셈이 되었다.

이번 같은 집중호우는 1000년에 한 번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지구온난화가 심해져 이보다 훨씬 큰 수퍼태풍, 더 많은 집중호우, 더 극심한 가뭄 등이 자주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엘 고어는 지구온난화로 티베트 고원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들이 녹아내리면서 앞으로 50년 이내에 세계 인구 40퍼센트가 심각한 물 부족을 겪게 될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정말 듣기 ‘불편하지만’ 우리가 지금 우리의 삶을 바꾸지 않는 한 ‘진실’이 될 것이다.

윤용택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