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으로 범인 잡는 족흔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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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미국드라마)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진행으로 한번 빠지면 중독을 쉽게 치유할 수 없는 과학수사 시리즈 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우리의 ‘길 그리썸’ 반장이 제아무리 셰익스피어와 오스카 와일드의 명문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박식함을 자랑할지언정 그도 역시 지문을 채취하는 것으로 수사를 시작한다. 사람마다 각기 고유한 지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쯤이야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 중의 상식. 때문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범죄자들이 수건이나 천으로 지문을 깨끗하게 닦아놓고 사라지는 장면은 평균 아이큐만 넘는다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지문처럼 쉽게 지울 수 없는 흔적도 있는 법. 이를 테면, 발자국이 그에 해당한다. 발자국 본을 떼어내는 의 대원들의 표정에 야릇한 기대감이 번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발자국에 숨어 있는 지문 못지않은 위력,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족흔법 혹은 신데렐라 수사법
발자국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이유는 발자국 역시 지문처럼 사람마다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모양의 신발을 신었다 하더라도 평소 걷는 습관이나 발바닥의 모양에 따라 다른 자국을 남기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1940~1950년대부터 이른바 ‘족흔법’이라고 하여 발자국을 범인 검거에 중요한 단서로 활용하고 있다. 족흔적은 우선 신발흔, 맨발흔, 구두흔, 양말흔 등 각종 ‘족적’을 조사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단지 사람의 발자국만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범인이 범죄현장에 남겨놓은 보행 흔적과 범행에 사용한 차량의 타이어 흔적과 범행 도구들의 흔적까지 족흔법의 대상에 들어간다.
범죄현장에 신발이 남아 있다면 신발 뒤축을 살펴 범인의 걷는 습관을 알아볼 수 있다. 뒤축의 닳은 부위에 따라 팔자걸음인지 일자걸음인지 등이 파악된다. 운동화와 구두는 범인의 직업군을 알려주기도 한다. 운동화를 신는다면 활동량이 많은 사람들이, 구두는 샐러리맨들이 주로 착용하는 신발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도로가 시멘트 바닥으로 뒤덮인 경우 고전적인 방법으로 족흔을 찾기에는 어려운 점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만큼 과학수사 역시 진화하기 마련. 알루미늄 휠이 달린 패스파인더(Path Finder)는 정전기의 원리를 이용해 바닥의 먼지를 빨아올려 발자국의 모양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발자국 문양대로 알루미늄 판 위에 달라붙은 먼지 위에 검정색 셀로판지를 깔아 문질러 주면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족흔을 채취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발자국을 지울 방법은 딱히 없지만, 보이지 않는 발자국도 끝내는 그 정체를 감출 수가 없는 것이다.
올해 초 영국에서는 ‘발자국 검거’를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이른바 ‘신데렐라 수사법’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수천 개의 신발 발자국 무늬를 데이터베이스화한 국가 신발정보기술(Footwear Intelligence Technology)로 신발의 바닥 무늬와 브랜드 로고, 신발의 전체 이미지 및 개별적인 특징에 대한 정보까지 구체적으로 수록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신발을 신었을 경우 나타나는 걸음의 각도, 몸무게의 분포에 대한 정보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도움말=임준태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객원기자 정유진 yji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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