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서양근대사상사연구"등 펴낸車河淳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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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90년대 들어 흔히들 국제화.세계화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고들 주장합니다.그런데 찬찬히 뜯어보면 실속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주장에 걸맞은 외국 문화,역사에 대한 연구가 아직 일천한 수준이거든요.』지난달 31일 정년퇴임을 맞은 원로 서 양사학자車河淳교수(65.西江大)가 최근 4권의 저서(탐구당刊)를 거의동시에 내놓으면서 밝힌 소감의 첫마디다.『2년전부터 준비했습니다.부끄러운 생각이 앞섰지만 후학들에게 참고가 될까해서 책을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4권의 책중에서『서양 근대사상사 연구』와 『현대의 역사사상』은 학술연구서고 『벽돌이 하나씩 쌓일 때』와 『글쎄,어떨까요』는 한국사회에 던진 각종 발언을 모은 사회비판 수상록이다.이미 나온 논문을 모은 연구서적은 내용의 통일을 위해 다시 다듬었고 새로 쓴 글도 추가했다.또 수상록도 오래 전에 신문.잡지등에 발표한 것들이지만,지난 80년 부총리의 안일한 태도를 질타했다는 이유로 당국이 제지해 싣지 못한「累卵」등 미게재분을 함께 엮었다.
『사실 수상집을 엮으면서 고충이 있었어요.3共 이후 억압적인정치상황에서 지식인의 책임은 사회에 대한 솔직한 비판이라는 생각에서 쓴 글들이 현재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심스러웠지요.그런데 우리 사회가 많이 바뀐 것 같은데도 근본적으 로 달라진 부분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아요.』 정치.경제.사회 모두 60년대이후의 문제점을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경제는 성장하고 과학은 발전했지만 문화면에서는 아직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경제가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뛰어오르려면 서구문화의 밑바탕에 대한 연구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항만.도로등 기간산업도 중요하지만 문화의 힘이 그 토대가 되어야 하지요.』 그는 특히 서양 합리주의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당분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인간의 이성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서양의 근대사상이 20세기 이후 그 한계를 속속 드러내고있지만 우리 생활과 문화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불합리한 정서나행동양식을 개선하는데는 참고할 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연.지연.동창회등 자기주변의 이해에 얽혀,합리적인 판단을내리고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문화가 아직은 빈약해요.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지금같은 정서를 계속 갖고서는 더 이상 커가기 어렵습니다.일단 서양역사의 뿌리를 정확히 이 해하고 그다음에 그 한계를 뛰어넘는 안목과 여유를 키워야죠.이를 위해 외국을 연구하는 인력과 대상을 크게 늘려 일반인들도 학문성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아야 합니다.』 車교수는 정년퇴임후에도 이번 2학기에 서울大와 西江大에서 시간강사로 강단에 선다.다소 자유로운 시간을 이용해 전에 펴냈던 『서양사총론』을 현대사 부분을 위주로 보완해 다시 선보일 예정이고 그동안의 강의노트도 정리해 책으로 펴낼 뜻을 내비쳤다.
〈朴正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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