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가서 '개혁·개방' 경제 학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김영일 북한 총리가 닷새간의 베트남 방문을 26일 시작했다. 열흘 전 김정일.농득마인의 평양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양국 간 협력방안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베트남의 '도이머이(개혁)' 정책과 경제발전을 체득하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마인 서기장을 만나 "베트남의 도이머이 정책과 경제발전 방향을 벤치마킹하겠다"고 선언했다.

1986년 도이머이 정책을 선포한 베트남은 과감한 개혁.개방 조치들을 단행하며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 전쟁을 치른 미국과 경제동맹 관계를 맺고 미국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6월엔 응우옌민찌엣 주석이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경제의 심장인 월가를 방문했다. 북한이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을 받아들이겠다는 건 결국 미국식 자본주의를 수용하겠다는 뜻이다. 전쟁을 치른 상대와 어떻게 화해하며 경제발전을 도모해갈지 베트남 모델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이머이 정책 학습이 우선=북한의 베트남 배우기는 김영일 총리의 일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김 총리의 일정은 대부분 베트남 경제개방.발전방안 학습, 산업.관광 관련 시설 시찰로 채워졌다. 27일 오전 그는 응우옌떤중 베트남 총리와 '농업과학 기술협력에 관한 양해각서' '문화 교류를 위한 실천방안'에 서명하고 농득마인 공산당 서기장을 방문했다.

오후엔 대표단 전원이 베트남 기획투자부를 찾았다. 베트남의 경제 개방과 발전 방안을 주관하는 부서다. 김 총리 등 북한 대표단은 긴 시간 설명을 들었다. 외신에 따르면 비공개로 이뤄진 이날 설명회에서 북한 관계자들은 외국인 투자 유치 방안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또 개방과 경제발전 방향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김 총리와 대표단은 이날 밤 베트남 최대 관광지인 할롱베이 리조트에서 묵은 뒤 이튿날 하뚜 석탄 광산, 북부 물류 중심지인 하이퐁 항구를 시찰했다. 대표단은 뚜언초우 섬의 리조트를 둘러보며 할롱베이 개발과 관광객 유치에 관해 묻기도 했다.

김 총리 일행은 29일 농업채소연구소를 찾아 농작물 품종개량 현황을 살펴보게 된다. 북한은 식량난 해소를 위해 품종개량 등의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30일 응우옌민찌엣 주석을 예방한 뒤 베트남 최고의 상업도시인 호찌민도 방문할 예정이다.

◆"체제 유지와 경제성장, 두 마리 토끼"= 북한의 이 같은 '베트남 배우기'는 체제 유지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절박한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도이머이 정책 이후 과감한 개혁.개방 조치들을 단행, 연평균 7~8%대의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은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공산당 1당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으로선 과거 사회주의 혈맹관계를 복원하는 차원에서도 베트남 식 개방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전문가 사이에서 "북한이 베트남 식으로 개혁.개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AP통신은 일련의 북한 움직임에 대해 "당장은 아니지만 북한 핵문제가 해결된 뒤 미국.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비한 장기적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박소영 기자

☞◆도이머이(Doi Moi)=낙후된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베트남이 1986년 도입한 개혁.개방 정책. 도이머이는 '새로 바꾼다'는 의미로 사회주의 체제에서 적극적인 시장경제 도입과 대외개방을 내세우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