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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복판 뛰어든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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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07면

신동연 기자

황영기(55·사진) 전 우리금융 회장이 돌아왔다. 그는 지지율 1위를 질주하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위의 핵심인 경제살리기 특위의 부위원장으로 다시 나타났다. 특위의 2인자이지만 이 후보가 위원장인 만큼 사실상 이 후보의 상징 이미지인 ‘경제살리기’의 총대를 멘 셈이다. 25일 만난 그는 자신의 변신을 “팔자”라고 표현했다. 평소 “정치 근처에도 안 간다”고 말했던 그였다. 이 후보는 왜 그를 불렀을까. 그는 왜 그토록 꺼렸던 정치권에, 그것도 한복판으로 들어온 것일까. 자기 색깔이 분명한 그가 타협과 절충이 요구되고 견제와 배신이 판치는 현실정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비대해진 공공부문 개혁해내야”

그에겐 이 후보가 탐낼 만한 상품성이 있다. 금융계에서 ‘황영기’라는 이름은 ‘시장’ ‘실용’으로 통한다. 삼성증권 사장 출신인 그는 우리금융 회장 시절 대주주인 정부와의 일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수익원을 확보하겠다며 LG카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예금보험공사의 제지를 당했다. 은행 얼굴인 창구 직원들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해야 경쟁력이 생긴다며 비정규직 행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아무런 보고도, 상의도 받지 못한 예보와 재경부는 분노했다. 일부 관료는 “고용 사장을 데려다 놨더니 오너처럼 행동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나는 이사 때부터 오너처럼 생각하도록 배운 사람이다. 그게 마음에 안 들면 나를 잘못 뽑은 거다”고 받아쳤다.

그는 직원들과의 회식 때마다 ‘1등은 아무나 하나’(‘사랑은 아무나 하나’의 개사곡)를 부르며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행원들을 자극했다. 은행은 3년 만에 업계 선두권으로 일어섰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에 미운털이 박힌 그는 올 3월 연임에 실패하고, 세간의 이목에서 멀어졌었다.

그렇다면 그의 선택의 뿌리는 뭘까. 이 후보는 그를 만나지 않고 지상(紙上) 발령을 냈다. 그는 잠깐 고민했을 뿐 거부하진 않았다. 그는 “현직에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 영입 제의를 거절했을 때 그는 임기를 1년 남겨둔 우리금융 회장이었다.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이 후보의 삶을 긍정한다. “6·25전쟁 때 동생을 잃고,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풀빵도 팔아보고, 데모도 해보고, 중소기업인 현대건설을 세계적 기업으로 일구고, 서울시장을 성공적으로 해낸 이 후보는 우리나라 근대화의 성공모델”이라고 주장했다. 경북 영덕에서 태어난 그도 어린시절의 가난을 딛고 일어섰다. 그는 “한국이 발전하려면 근대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자부심을 토대로 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안 되면 큰일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한 확신이었다. 다른 요인도 설명했다.

“중국의 힘, 다시 부활하는 일본, 이 사이에서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 실사구시적인 생각을 할 때지, 좌파적 이념에 휩싸일 때가 아니에요. 이 후보는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닙니다. 실용이라고 봐야 해요. 국민 잘살게 만들자는데 뭐 그리 따질 게 많으냐는 거죠.”

‘먹고살 일’을 첫째로 걱정한다는 점에서 그는 철저하게 이 후보와 코드가 맞는 셈이다.

조직이 효율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참지 못한다는 것도 이 후보와 그가 닮은 점이다. 공공부문 얘기가 나오자 그는 “외환위기 이후 개혁을 못한 정도가 아니라 자생적으로 성장한 것을 그냥 방치했다”며 “공공부문 개혁의 1번은 능력 있고 효율적이고 노조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을 공공기관의 최고경영자(CEO)로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계획을 묻자 그는 “지금 해야 하는 일은 이 후보가 당선되도록 하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 계획을 물었다. 그는 “국회의원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공천 달라고 부탁도 하지 않을 것이고, 받고 싶지도 않다. 국회의원과는 ‘케미스트리(기질)’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어떤 바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전문경영인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며 “성공한 경영자가 정부에 가서 일하다가 다시 돌아와 계속 성공한 경영자로 남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은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그렇듯이 재무부 장관 하고 나와 금융기관장을 할 수도 있고, 금융기관장 하다가 금감위원장이나 재무부 장관을 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렇게 되려면 사회적 신뢰가 높아져야 합니다. 정경 유착, 특정 재벌 편들기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아직 그런 수준이 되진 않았지만 어딘가에서는 그런 노력이 시작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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