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경지 오른 ‘생활의 達人’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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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15면

일러스트 강일구

지상에서 7층 아파트에 신문을 척척 꽂아넣는 배달원, 음식 그릇을 수북이 담은 쟁반을 겹겹이 머리 위에 쌓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국물 한 방울 안 흘리는 밥집 아저씨, 자갈치시장에서 하루에 3000개의 생선 상자를 만들어 눈을 감고 못질하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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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생활의 달인’을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참으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음에 새삼 놀라게 된다. 한 사람의 천재가 어리석은 몇만 명을 먹여살린다고 했던가. 어쨌든 그런 천재들도 사소한 단순작업을 반복해 ‘달인’이 돼버린 이들의 노동이 없다면 제대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살기 힘들어질 것이다.

무엇이든 ‘경지’에 오른 모습은 아름답다. 명필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불 꺼진 방 안에서 재봉틀로 옷 한 벌을 지어내는 달인, 방 안 가득한 떡가래를 순식간에 썰어내는 떡썰기의 달인, 프로판 가스통을 몇천 개씩 굴리면서도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달인.

장자의 『장자』에는 백정 포정이 소를 능란하게 잡는 모습을 예로 들어 그가 ‘하늘의 이치와 진정한 자유로움’을 터득해 ‘기(技)’를 넘어 ‘도(道)’와 ‘예(藝)’의 경지에 도달한 아름다움을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적어도 10여 년 이상의 세월을 쌓아올려 한 가지 일에 달인이 된 이들은 눈과 감각을 넘어서 ‘정신’으로 사물을 대하는 도를 통달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기계 같은’ 그들의 기술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마음 한쪽이 씁쓸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그 ‘달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분업화된 노동의 프로세스에서 말 그대로 ‘기계처럼’ 오랜 세월을 지나왔을 그들의 인생을 생각하면 말이다. 젊어서부터 ‘기계를 방불케 하는’ 단순 숙련작업의 달인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걸 보면서 달인들을 자신의 역할 모델로 삼는 시청자도 별로 없을 것이다. 천장이 낮아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곳에서 20년 넘게 다림질을 하는 사람, 고무신 하나를 만들면 150원을 받으니 하루에 12시간 꼬박 일해 200개의 고무신을 만들어야 겨우 3만원을 벌까말까 하는 사람들. 방송은 이들의 이름도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다. 그저 ‘달인’이라는 명사로 호칭하며 어려운 미션을 척척 해내는 그들의 손재주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이들의 삶이 ‘달인’이라 불린 뒤에 나아졌을까? 고무신을 하루에 50개 만들다가 200개를 만들면 그 달인의 생활은 조금 더 여유와 휴식을 누리는 쪽으로 변할까. ‘맛집’ 방송에 나온 음식점은 그걸로 대박집으로 변신하는 이득을 보기라도 하는데 이 ‘달인’의 훈장은 고단한 삶에 별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어쨌건 그 달인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에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이 게을러터진 인생은 한 번씩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는 때로 감동이다.

눈을 감고 생선상자에 못을 박는 자갈치시장 아저씨는 “저는 그래도 남의 가슴에는 못박지 않잖아요”라며 웃겨주고, 꽈배기 아저씨는 푸지게 덤 인심을 쓰면서 “내가 보석장사라면 덤을 못 줄 텐데 꽈배기장사를 하니 이렇게 줄 수 있다”며 그것이 이 일의 즐거움이란다. 치열할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야만 나올 수 있는 이 달인들의 말들, 근사하지 않은가.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거쳐 영화 제작자로 활약한 문화통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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