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체제 短命.順航논란-김학준교수 세계정치학회총회참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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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8월21~2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정치학회(IPSA)제16차 총회는「민주화」를 주제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민주화는 물론 옛 공산권에서 현재 진행중인 민주화를 깊이 토론했다.
토론가운데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민주화 主體들이「책임의정치」를 하지 않는다면,즉 국민들이나 지도자들이 책임감을 갖고행동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좌절될 것』이라는 경고와『여성의 정치참여를 크게 신장하라』는 권고였다.
2천명의 정치학자들이 참석해 약1천편의 논문이 발표된 이번 총회는「분단국들의 체제통합」이라는 分科도 승인해 필자는「金日成사후 남북한 체제통합의 철학과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원래 참석하기로 예정됐던 북한의「조선사회과학자협회」소속 김명우가 불참해 남북학자사이의 토론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방문의 경험을 지닌 일본의 북한전문가들이 토론에 참석해 북한의 최근 정치상황에 대한 분석들이 다각적으로 제시됐다. 우리의 관심을「金日成사후의 북한」에 국한하기로 하고 우선일본 東京大 명예교수인 세키히로 하루(關寬治)교수의 북한방문 경험을 소개하기로 하자.
지난8월 초순부터 중순까지 약10일동안 북한을 방문한 그는『북한주민들은 金正日후계체제를 기정사실로 받아 들이고 있었으며,북한사회는 안정돼 있고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보고했다.
한 토론자가『오늘 아침 독일신문에「金正日반대 전단살포」기사가보도됐는데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그는『믿기지 않는다』고 답변했다.지난 70년대이후 열한번이나 북한을 방문해 북한을 잘안다고 자부하는 그로서는「金正日정권 順航論」을 지지하게 된다고덧붙였다.
필자의 개인적 판단으로 세키교수는 북한에 관해 대체로 호의적입장을 취해온,따라서「親北」이라고 볼수 있는 인사다.
그렇기 때문에「金正日순항론」에 기울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생각도 들었다.
金日成 사망이전에 평양방문의 경험이 있는,그러나 대체로「親韓」이라고 볼 수 있는 뮌헨大의 고트프리드 칼 킨더만 교수는『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그러나 「金正日 순항론」을 받아들이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대목들이많다』고 주장했다.
『金正日정권은 결국 과도정권으로 끝날 확률이 높으며 黨-軍-政의 과도적 연합체제가 새롭게 등장해「개혁과 개방및 남북관계 개선」쪽으로 방향을 선회함으로써 북한의 사회주의체제를 살리려 안간힘을 쓸 것으로 본다』고 그는 전망했다.
베를린 자유大 헬뮤트 바그너 교수도 대체로 비슷한 취지로 논평했다. 그러나 그는『東獨이라는 하나의 국가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갑자기 붕괴됐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북한의 정치변동을 다각적으로 깊이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토론이 끝난 뒤 필자는 익명을 요구하는 옛 東獨의 한 북한 전문가와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문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그는 金日成 생시에 무려 30회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으며 金日成을 몇차례 면담한 경험이 있는 옛 東獨의 대 표적「北韓通」이었다.
그는 스스로『나는 아직도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를 버리지 않고있다』고 실토한 뒤 북한의 장래에 대해서는「상대적 의미에서의 비관론」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평양은 물론 중소도시와 농촌까지 고루 다녀봤다는 그는『나는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북한의 장래를 비관하지 않았다』고 말하고『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 입장을 바꾸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 첫번째 요인으로 소련과 동유럽에서의 공산주의의 붕괴를 꼽았다.「공산주의는 영원하리라」던 신념이 무참히 깨어지면서 북한의 金日成체제를 다시 보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 두번째 요인으로 「공산주의의 붕괴이후 두드러진 金日成과 金正日사이의 不和」를 꼽았다.
외부에 잘 안 알려져 있었지만 벌써 파악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그의 설명에 따르면『金日成은 金正日에게 권력을 물려주면서도金正日의 통치자로서의 자질에 대한 의문을 버리지 않고 있었으며,이것이 공산주의 붕괴가 낳은「북한 체제붕괴의 위기감」과 상승작용을 하면서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金日成은 지난해 12월 金英柱를 국가부주석겸 黨정치국정위원으로 화려하게 복귀시키면서 金正日을 돕게함과 동시에 스스로 국정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고 풀이했다.
이것은 자연히 父子간 갈등을 빚었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 말끔하게 수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었다.
그는 金正日정권의 출범이 공식화돼도 통치엘리트들 사이의 갈등은 해소되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래서 결국 金正日정권은 長壽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 뒤우여곡절은 있겠으 아무리 길게 잡아도 앞으로 10년안에 북한에서의 공산체제는 무너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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