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무책임 原電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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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산업자원부는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원전센터) 후보지를 찾는다며 새로운 일정표(로드맵)를 발표했다.

로드맵대로만 일이 술술 풀린다면 올해 12월 31일에는 18년간 풀지 못한 원전센터 후보지가 확정된다.

그러나 로드맵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렇게 될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다.

우선 후보지를 선정하는 주체가 정부에서 일반 국민으로 넘어갔다. 원전센터 유치를 청원하는 단계부터 예비신청.주민투표 등 거의 모든 과정을 주민들이 참여해 결정하도록 했다. 산자부 공무원들은 큰 짐을 덜었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다'는 명분의 이면에는 '공동책임=무책임'이 될 위험이 깔려 있다. 아무런 결정을 못한 채 1년을 또 허송세월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유치청원 시한인 5월 31일까지 원전센터를 유치하겠다는 읍이나 면이 선뜻 나올지도 불투명하다. 로드맵에 따르면 희망지역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주민 3분의 1의 찬성 서명을 받도록 돼 있다.

그러나 부안사태의 기억이 생생한 마당에 과연 이 같은 주민들의 자발성이 얼마나 발휘될 것인지 의문이다. 로드맵이 지칭하는 '주민'의 실체도 분명치 않다.

유치를 희망하는 지역이 나와도 그 다음 과정이 또 산 넘어 산이다. 면 단위에서 유치를 희망해도 군 단위에서 똑같은 결정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군내 다른 면민들이 반발할 경우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군수가 예비신청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원전센터 후보지 결정으로 가는 길인지, 아니면 '뜨거운 감자'를 일단 덮어놓자는 방편인지 알 수 없는 로드맵이다.

장세정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