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제일기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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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서울 한남동에 사옥이 있는 제일기획이 서울 강남 지역에 별도 사업장을 냈다. 제일기획은 서초동 삼성서초타운 A동 18층에 ‘제일기획 더 사우스(The South)’를 열고 22일부터 업무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서초동 사업장(더 사우스)은 별도 법인은 아니지만 광고 수주와 제작에 관해서는 완전히 별도의 회사처럼 운영된다”고 밝혔다. 제일기획 안에 또 하나의 제일기획을 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더 사우스’에 기획·제작·마케팅에다 별도의 지원팀까지 갖춰 본사와 독립된 제작 시스템을 갖췄다.

‘더 사우스’ 근무 인원은 70명. 제일기획 전체 직원 810여 명의 10분의 1도 되지 않지만 국내 광고대행 업계에선 10위권에 드는 만만찮은 규모다. 이들은 광고 수주 등에서 강북 사업장과 내부 경쟁을 벌이게 된다.

제일기획이 복수 사업장을 둔 데는 몇 가지 포석이 깔려 있다. 우선 사실상 독립된 광고회사를 둠으로써 광고업계의 관행인 ‘1업종 1광고주’의 벽을 넘으려는 것이다. 대다수 업체는 경쟁사의 광고를 만드는 대행사에 광고를 맡기지 않는다. ‘이해 상충’ 과 ‘기밀 유출’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행 때문에 제일기획 입장에선 국내 1위사이면서 굵직한 새 광고주를 발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미 웬만한 업종에서 큼지막한 고객사 한 곳씩은 확보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전체 수주 물량의 75%에 이르는 삼성 관련 광고 비중을 낮추려는 뜻이다. 제일기획은 지난해 광고취급액 1조8487억원, 매출 7087억원으로 부동의 업계 1위지만 계열사 의존도가 과도하다는 이야기를 들어 왔다. 회사 관계자는 “강남 사업장에서는 ‘비 계열 물량’(삼성계열사 외 광고물량)을 따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남사업장이 맡게 된 광고는 에쓰오일·신한카드·해찬들·하이모 등이다.

일본에도 1, 2위 광고업체인 덴츠(電通)나 하쿠호도(博報堂)가 특수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같은 업종 내 복수 광고주의 대행업무를 처리하려고 별도 사업장을 두는 사례가 있다.

제일기획의 김낙회 사장은 “다양한 광고주 개발을 위해 강남 사업장에서는 주로 젊은 감각의 광고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한 광고대행사 관계자는 “별도 조직을 만들어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가 성공한다면 업계에 격변을 몰고 올 수 있다”며 긴장의 빛을 내비쳤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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