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연의 세계 일주] "담배 못피게 할거믄 밥은 왜 주는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홍콩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 것이 틀림없는 할아버님 열 두분.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러 나오신 효도관광 팀이란다. 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리는데, 할아버님 한분이 보딩패스(비행기 좌석표)를 유심히 들여다보시며 하는 말씀.

"아, 이게 좌석이여, 입석이여?"

얼굴을 붉히며 고생고생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내 앞에서, 다른 할아버지가 말을 받으셨다.

"세 시간 반을 간다는디, 설마 세워서 가겄어?"

비행기에 탑승하신 할아버님 일행은 공교롭게도 바로 내 앞자리에 줄지어 앉으셨다. 곧 이어 기내식이 서비스됐고, 할아버님 일행은 "비행기에서 밥도 주니 얼마나 고마우냐"며 맛있게 식사를 마치셨다.

문제는 식사 후. 근래 운항하는 비행기들은 대개 모두 금연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할아버님들, 단체로 '식후 연초 불로장생'을 실천하느라 모두 담배를 피워 무시는 것이 아닌가. 비행기 안은 순식간에 자욱한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달려온 스튜어디스들이 할아버지 설득 작전에 들어갔으나, 콧방귀다.

"무슨 상관이냐"며 되레 큰소리에, 도넛 모양 연기를 뿜으며 즐거워하시기까지.

아, 금연 비행기인지 흡연 비행기인지 모르겠다. 애원도 설득도 안 통하는 할아버님들에게 지쳐버린 승무원은 드디어 최후통첩을 날렸다.

"할아버님! 계속 담배 피우실 거면 비행기에서 내리세요!"

몇 천피트 상공에서 내리긴 어디로 내려? 그러나 순진한 우리 할아버님들, '내리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셨나 보다. 자식들이 애써 보내준 여행인데 목적지가 어딘지는 보고 와야지. 안 그런가? 담배를 비벼 끄시면서도, 무척이나 못마땅하셨던 우리 할아버님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겄다"며 이렇게 한마디를 남기셨다.

"아, 담배도 못 피게 할거믄 밥은 왜 주는겨?"

기내는 한바탕 뒤집어졌다. 여기저기 터진 애연가 승객들의 웃음 섞인 "옳소! 옳소!" 하는 동의 속에 우리 할아버님은 구겨진 체면과 자존심을 한껏 만회하셨던 것이다. 애연가들이 점점 설 땅을 잃어가고 있는 요즘, 비행기 역시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항공사가 전 노선 '금연 비행기'를 표방하고 있는지라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노선에 탑승한 애연가님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닐 터. 불타는 흡연 욕구를 참지 못해 기내 화장실에 들어가 문 걸어 잠그고 몰래 담배 연기를 뿜어내다 물벼락을 맞는 등(화재 감지기가 달려 있어 연기에 반응하기 때문) 그 사례 또한 다양하다. 이뿐 아니라 '공공장소 흡연 금지' 조치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니, 애연가들이 설 곳은 점점 좁아만지는 실정. 어쩌겠는가. 흡연자의 천국, 프랑스로 이민 가거나, 그럴 형편이 못 되면 끊으셔야지.

참, 한가지 더. 필자에게는 모 항공사 남자 승무원에게서 전수받은 '기내에서 담배 피우는 노하우'가 있으니, 필요하신 분은 따로 조용히 연락주시길(단, 필자는 비흡연자인 관계로 그 노하우가 유용한지 어쩐지는 실험해 보지 못했음).

조정연 여행 칼럼니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