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혁명시대>上.국내기업들의 저가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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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용산전자상가내 7개 컴퓨터 조립.판매업체 사장들이 지난 6월초 긴급 모임을 가졌다.
국내외 유명기업들의 경쟁적인 가격인하로 컴퓨터 값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짐에 따라 국내 중소 조립업체들이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이심전심으로 이루어진 모임이었다.
그동안 용산전자상가의 판매무기는 유명 브랜드 제품보다 값이 20~30% 싸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외 대기업들의 제품값이 오히려 싸 매출은 급격히 떨어졌다.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해보았으나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마진을 줄이고 원가절감을 한다 해도 대기업과 가격싸움을 벌여이길 자신이 도무지 없었다.
그때 에스엠시의 趙경완 사장이 아이디어 하나를 제시했다.『대기업들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가격인하 전략을 추진한다면 우리도 힘을 합해 컴퓨터의 기능을 높이고 값을 내리는 전략을 택하자는것』이었다.
모임에 참석했던 7개업체가 6월 한달간 공동으로 기술개발에 나서 기존 컴퓨터보다 기능은 10%정도 향상되고 값은 10%더싼 高機能.低價제품을 만들어냈다.
85만원대의「파라오」486컴퓨터는 이렇게해서 탄생,순식간에 1백대가 팔려 나갔다.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연말까지 1천여대를더 생산해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가격경쟁을 벌일 계획이다. 종전에는 기술개발에 의한 신제품을 선뵈면서 값을 올려받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이제는 용산전자상가의 중소컴퓨터 조립.판매업체들까지 제품은 고기능화하면서 가격은 오히려 낮춰 소비자를확보하려는,새로운 형태의「가격혁명」이 업계전반으로 확 산되고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윤을 높이는 것보다 값을 내려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전자 마케팅 담당자는『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값내리기 경쟁은 앞으로 첨단 전자제품을 중심으로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라고말했다. 휴대전화와 삐삐는 이미 60만원대와 10만원대로 떨어졌고 프린터의 경우 삼성전자가 지난5월 잉크제트 제품보다 인쇄속도등 성능면에서 몇배 뛰어난 레이저프린터를 내놓으면서 가격이파격적으로 내렸다.최신 고기능제품으로 1백20만원대 제 품이던레이저프린터 가격을 절반수준으로 인하,기존 잉크제트제품 가격대인 69만원 수준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전자 尹종진 대리는『얼마전까지만 해도 국내진출 일부 외국업체들이 시장잠식을 위해 마진을 줄여 값을 인하했으나 최근에는첨단기술을 이용한 원가절감으로 값을 내리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휴대전화 가격인하도 이와 유사하게 국내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모토로라社를 중심으로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을단축시키는 방법을 통해 신제품을 구형 제품 가격수준으로 끌어 내리는 전략이다.컴퓨터의 제품 라이프사이클이 2~3년 전부터 1년 정도로 줄어들고 가격이 매년 전년대비 20~30%씩 떨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앞으로 경기가 크게 살아나 소비자가 제품의 값에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되면 혹 모르나 상당기간 기술력에바탕을 둔 이같은 형태의 가격인하 경쟁은 지속될 것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金是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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