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할말은하자>反자본주의적 情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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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모두가 富를 추구하면서도 정작 부자나 대기업에 대한 평가는극히 인색한 사회.모두가 신분 상승을 꾀하면서도 평등주의가 강한 사회.」 어느 사회학자가 진단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기업인들은 여기에 덧붙여 우리가 자본주의경제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내면에는 어딘지 모르게 反자본주의적 정서가 깔려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한마디로 경제의 중심이 되는 대기업에 대한 반감,즉 反기업적 정서가 있다는 얘기다.
물론 反기업적 정서가 강하게 형성된 데는 일차적으로 기업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개발시대에 정부로부터 각종 특혜와 지원을받아 성장한 것이 사실이다.그 때문에 자유시장경제 질서가 자리잡혀가고 있는 요즘까지 대기업은 논리를 떠나 항상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풍토 속에서 언론도 대기업이라면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 관행이다.사리분별을 가리기 앞서 독자들에게「후련하다」는 느낌을주는데 더 신경 쓰는「비판상업주의」가 오히려 正論으로 여겨지는경우도 적지 않았다.한때 某그룹이 돼지를 대규 모로 키워보려 하자 일부 언론은『재벌이 돼지 사육까지 손대 농민의 생계를 위협한다』고 비난했고 이것이 일반인들의 정서에 먹혀들면서 결국 정부는 돼지 사육두수를 인위적으로 제한하고 나섰다.
그러다가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이 진행되면서 시장개방이 현안으로 부각되자 정부안에서도 기업농을 육성하자는 얘기가 다시 거론되었다.
정서에 편승한 정책의 뿌리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쉽게 알수 있다.
정서 하나로 자유로운 경쟁을 억누르고 있는 대표적 사례로는 대기업의 특정업종 진출을 반대하는 여론을 꼽을 수 있다.기업간경쟁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보게 될 소비자들조차 反기업적 정서에휩싸여 스스로의 이익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기업의 한국시장 진출이 시간문제라면서 오히려 국내기업의 시장참여 길을 막아두고 있다.
또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멀티미디어나 통신사업도 마찬가지다. 〈南潤昊기자〉 현재 대기업이 소프트웨어에 참여하는데 대해반대여론이 강하게 나오고 있는데 명분은 언제나 똑같은 대기업의경제력 집중 억제다.우리보다 앞서가는 美國의 경우 대기업인 AT&T가 소프트웨어 사업까지 맡고 있다.업계에서는 막대한 자본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소프트웨어사업에 대기업의 진출을 막을경우 경쟁력 강화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시장이 개방되면 외국 대기업이 들어와 시장을 독차지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여론이 대기업을 비난하는 것은 그냥 정서라고 보아넘길 수 있습니다.문화가 그런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그러나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을 만드는 일부 관리들마저「무엇이든 골고루 나눠 가져야 한다」는 식의 발상을 갖고 있다면 곤란합니다 .』(D전자 L이사) 反기업적 정서는 개방화 시대에 더욱 문제가 된다.
외국의 개방 압력 앞에서 대기업을 견제하려다가는 오히려 敵前分裂을 일으키는 형국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조금 오래된 얘기이긴 하지만 재무부는 88년 합작생보사의 인가를 내주면서 1 6~30대 대기업의 지분율을 50%미만으로 묶어놓았다.대기업의경제력집중을 억제한다는 취지였고 당시 거세게 일던 민주화 바람속에서 좋은 명분이 됐다.
이 규정 때문에 국내기업은 소주주가 되고 덩치가 훨씬 큰 美國의 대기업(애트나.메트로폴리턴생명)은 대주주가 됐다.한 마디로 국내 대기업이 밉다고 외국 대기업을 키워준 꼴이다.그래도 기업들은 인가권을 쥐고 있는 재무부의 눈치를 보느 라 불만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자는 정부 정책에는 이견이 없습니다.그러나 그 방법이 너무 단선적이라는 것이 문제죠.개방시대에 외국기업의 공세를 견제해줘야 할 정부가 오히려 앞장서서 국내기업에 불평등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모순입니다.정 서에 휩쓸려 국내기업을 묶어두면 국가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H社 K사장) 심지어는 사양기업을 정리하고 장래성 있는 업종으로 갈아타는 구조조정을 하려 해도 언론이나 정책당국은『대기업이또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확장하려 한다』고 비난하는 경우도 적지않아 기업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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