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내남편 아내가 결백밝혔다-추적7년 재수사끝에 勝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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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고도 사고상황을 진술할 수 없는약점 때문에 억울하게 가해자의 책임을 지게된 50대 가장의 누명을 아내가 7년에 걸친 추적끝에 벗겨냈다.
남편의 결백을 믿고 끝까지 진상을 캐내고만 집념의 주부는 충남천안시 원성동에 사는 金慶淑씨(50)-.
그러나 그녀는 진실을 밝혀낸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도『경찰.
검찰.법원이 조금만 성의있게 사건을 다루었으면 한 가족이 7년의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일선의 법집행에 응어리진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金씨의 남편 朴炳炎씨(50)가 사고를 당한 것은 87년4월29일 오후6시쯤.朴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천안시원성동 원성네거리에서 파란 신호등을 따라 직진하던중 교차로 중간쯤에서 신호를 어기고 갑자기 오른쪽에서 튀어나온 한양여객소속 버 스(운전사 張재길)에 들이받혀 머리의 반이 부서진채 뇌사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사고후 상황은 정반대로 변했다.운전사 張씨와 버스회사측이 목격자 3명을 회유,朴씨가 신호를 위반한 것처럼 거짓증언을 하도록 했기때문이다.같은해 9월과 11월 천안경찰서와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張씨와 張씨측 증인들의 진술을 토 대로 朴씨의과실로 각각 결론짓고 張씨를 무혐의 처리하고 말았다.하지만 金씨는 이를 믿을 수 없었다.
『목격자중 1명이 사고직후「버스운전사 잘못」이라고 말해 놓고는 경찰에서 진술을 바꾸었더군요.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지요.』 그러나 조사가 끝난 잘못된 상황을 뒤집기는 쉬운일이 아니었다.金씨는 88년12월 대전지법 홍성지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 기각당했고 대법원에서도『원고의 80% 과실』이라는 확정판결을 받았다.잘못된 경찰.검찰의 수사자료를 근거로 한판결이었다.
남편의 병간호와 소송준비로 金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백화점 핸드백가게도 문을 닫아야 했다.시부모.3남매등 식구들의 생활비마련을 위해 집을 저당잡혀야 했고 사채를 끌어다 충당해야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말렸습니다.변호사들까지도 승소 가능성이 없다며 사건을 맡으려 하지 않았으니까요.하지만 식물인간이 된 남편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꼭 진실을 밝히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金씨는 張씨측 증인들을 일일이 찾아나섰다.그러던중 경기도 송탄에 사는 李모씨로부터 『사고후 張씨측이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줄테니 처벌만 면하게 잘 얘기해 달라고 해 거짓증언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金씨는 곧바로 검찰에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사건이 너무 오래됐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법무부.교통부는 물론 청와대에까지 재조사 진정을 했으나 어느 곳도 힘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金씨의 끈질긴 요구로 91년10월 검찰이 재수사에 나섰고 張씨측 증인 3명에 대한 조사를 통해 張씨가 신호를 어겼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결론을 미뤄오던 검찰은 공소시효(5년)를 불과 닷새남겨놓은 92년4월24일 마침내 張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혐의로 기소해 대법원에서 금고 8월의 유죄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金씨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지난달 교차로 통행에 따른 주의 의무 소홀로 30% 과실을 제외한 2억6천5백만원 배상 승소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남편 朴씨는 현재 뇌사상태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나긴 했지만 말을 못하는 것은 물론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다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됐고 한쪽눈마저 실명한 상태다.
『뜻밖의 사고로 단란했던 우리 가정이 파괴됐지만 그래도 진실이 밝혀져 기쁩니다.』 金씨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편의움푹 팬 머리를 쓰다듬으며 모처럼만에 환하게 웃었다.
〈鄭載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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