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재조명>2.무너지는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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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東京都 신주쿠(新宿)區 아라키(荒木)町,아시아경제연구소 맞은편에 지하 2층.지상 23층짜리「버블 탑」이라고 불리는 고층 건물이 있다.이 건물은 완성직전 공사가 중단된 채 2년5개월동안 방치된 상태다.
건축주는 고급맨션건축과 판매로 잘알려진 도코(東高)하우스(사장 井谷助二).90년3월 버블경제가 한창일때 착공했으나 버블이꺼지면서 건물을 인수키로 한 부동산업자가 계약파기를 요청,분쟁이 일면서 92년3월부터 공사가 중단된 것이다.
현재 이 일대의 땅값은 평당 1천6백만엔(약1억2천8백만원)정도로 도코하우스가 사들일때(평당 3천만엔)의 절반수준이다.
신주쿠區 하라(原)町의 고급맨션「노스웨스트」에 살고 있는 한국상사원 P씨는 최근 집세를 깎는데 성공했다.버블이 한창일 때인 지난 92년 25평짜리 아파트를 월세 40만엔씩에 계약한 그는 최근 집값이 내렸는데도 월세를 그대로 받는데 항의,주인과끈질긴 투쟁끝에 37만엔으로 값을 내리기로 했다.
일본에는 借地借家法이라는 것이 있어 집값이 오르면 주인이 임대료증액을 요구하고 내리면 입주자가 감액을 요구할 수 있다.그러나 지금까지 집값이나 땅값이 오르기만 했지 내린 적이 없어 입주자가 임대료 감액청구를 한적이 거의 없었다.
일본은 2차대전후 줄곧 땅값이 올랐다.공시지가는 73년 지가가 고시된이래 75년 한해를 제외하고는 내린적이 없었다.
88년 상반기에는 공시지가가 25%나 올랐다.부동산업자와 기업은 85년 플라자 합의이후 찾아온 초저금리를 활용,부동산과 주식에 투자를 했다.담보가 있어야 대출해주는 은행은 대출증가를위해 부동산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경제의 기초적 조건을 무시한 채 무작정 오른 땅값은 91년 하반기부터 하락하기 시작,현재까지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공시지가 상승률은 90년 상반기 17.0%에서 하반기 13.
2%,91년 상반기 10.7%로 점차 하락하다 91년 하반기에는 2.7%로 뚝 떨어졌다.92년부터는 아예 공시지가상승률이 마이너스가 돼 전년동기보다 값이 하락했다.
토지와 함께 버블경제의 2대상징인 주가도 마찬가지다.88년 NTT주식이 공개될때 일본인들은 너도나도 공모주 청약에 나섰다.주식을 사는 것은 곧 돈을 버는 것이었기 때문이다.개인만이 아니라 기업도 모두 소위「財테크」라는 것에 매달렸 다.
닛산(日産)자동차의 경우 88년도에 경상이익의 절반이상이「財테크」를 통한 것이었다.89년12월29일 닛케이(日經)평균주가는 3만8천9백16엔으로 사상최고를 기록했다.그후 급락하기 시작한 주가는 92년에는 한때 1만5천엔이하로 하락 했다.현재는2만1천엔대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주가가 3년간(90~92년)계속 하락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45년 패전후 일본경제는 고도성장을 계속해왔다.50년대부터 60년대에 이르기까지 연율 10%의 초고속성장을 했다.70년대에도 평균 6%의 성장률을 유지했다.
경제가 고도로 성숙된 80년대에도 성장률은 변하지 않았다.그러나 90년대들어 성장률은 90년 4.8%,91년 4.3%,92년 1.1%,93년 0.1%로 침체국면에 빠졌다.이제 더이상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고도성장을 뒷받침한 것은 소비수요 확대다.늘 소비는 확대된다는 신화를 믿고 일본기업들은 설비투자를 늘려왔다.
설혹 경기를 잘못 판단했다 하더라도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에 선행설비투자가 부담이 되기 보다는 경쟁력강화의 원천이 됐다.
그러나 91년도까지 늘기만 하던 소비가 91년도부터 감소하기시작,성장신화들이 모두 무너졌다.
신화소멸은 신앙의 파탄을 가져온다.그래서 일본은 明治시대 이래의 염원인「서양 따라잡기」에 성공했는데도 불구하고 자부심과 자신감을 상실,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다.
[東京=李錫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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