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쿠바의 탈출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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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부쩍 늘고 있는 쿠바 주민들의 다량 탈출사태는 쿠바의 현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증거다.쿠바인 수백명은 현재 마리엘港에 정박중인 油槽船을 점거하고 美國行을 요구하고 있다.이에 앞서 지난 5일 아바나에선 美國行을 막는 당국에 항 의하는 시위가 일어나 1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했다.
이같은 사태는 쿠바가 처한 극심한 경제난에서 비롯된다.쿠바는59년 혁명이후 사회주의 블록,특히 蘇聯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를 유지해왔다.소련은 쿠바産 사탕수수를 「사회주의우호가격」으로비싸게 사주고 自國産 원유를 염가로 제공,이를 쿠바가 외국에 되파는 형식으로 연간 약 50억달러의 경제원조를 해왔다.
그러나 91년 소련붕괴로 경제원조는 단절됐으며,이에 앞서 東유럽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로 쿠바는 거대한 시장을 잃었다.특히최근 기상불순으로 지난해 사탕수수 생산은 전년도의 절반수준인 4백28만t에 그쳤다.주로 소련으로부터 제공되던 원유공급도 급격히 줄어 89년 연간 1천3백만t이던 것이 지난해엔 3백30만t에 불과했다.
주민생활은 식량.생필품을 배급제에 의존하고 있으나 만성적인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에너지 부족으로 인한 전력난으로 수도 아바나에서는 停電이 하루 10시간을 넘고 있다.
극도의 생활고는 주민들의 탈출로 나타났다.지난 80년 쿠바인12만5천여명이 미국 플로리다로 다량탈출한 사건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난민탈출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지난해 9월 현역 공군대위가 미그21 전투기를 몰고 미국으로 망명했으 며,11월엔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스포츠대회에 참가한 쿠바 선수단 20명이집단 망명했다.또 12월엔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의 딸이미국으로 망명한 웃지못할 사건까지 일어났다.
카스트로는 지난해 중남미 공산당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사회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느냐다』고 실토했다.北韓과 함께 지구상 마지막 남은 사회주의 孤島인 쿠바도 이제 서 서히 終末을告하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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