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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속도, 가을의 깨달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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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만약 신이 거대한 광각렌즈를 단 카메라가 있어 이즈음 우리의 산하를 시차를 두고 연속적으로 찍는다면 그것은 마치 시험관에 담가 놓은 리트머스 시험지가 ‘쭈욱’ 물드는 것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다름 아닌 단풍 때문이다. 어느 순간 산과 들, 심지어 도시의 아스팔트 위까지 뒤덮고,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색감의 바이러스’를 산포하며 점령군같이 다가오는 단풍 말이다.

가을은 단풍과 함께 왔다가 그것과 함께 간다. 단풍은 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지면 나타나기 시작한다. 특히 단풍이 산 전체 면적의 20%를 차지하면 ‘단풍 시작일’로 본다. 우리나라의 단풍은 대개 9월 말께 설악산 산머리에서 시작된다. 올해는 다소 더운 날씨 탓에 첫 단풍이 평년보다 3~4일 늦어져 9월 29일께 시작됐다. 단풍은 산 위에서 산 아래로 하루 40m씩 내려가며 물든다. 또 북쪽에서 남쪽으로 하루 25㎞씩 소리 없이 이동한다. 이것이 바로 가을의 속도다.

단풍이 산 전체 면적의 80%에 달하면 ‘단풍 절정일’로 간주한다. 왜 100%가 아니라 80%를 절정이라 할까? 100%로 꽉 채워지는 그 순간 이미 단풍은 나뭇가지에서 땅으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달도 차면 기울듯 단풍 역시 만산홍엽(滿山紅葉)이 되는 순간 가지마다 잎들을 떨구기 시작한다. 단풍처럼 권력·사업·인생 아니 그 무엇이든 절정이면 곧 추락의 시작인 셈이다.

9월 말께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 물결은 지역적 편차가 있긴 하지만 10월 20일인 오늘 즈음엔 오대산· 치악산·지리산까지 내려가 절정에 이르고 10월 말, 11월 초에는 남해안과 바다 건너 제주도 한라산까지 뻗어 간 후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가을은 그렇게 왔다가 지체 없이 떠나간다. 하지만 권력의 속도는 가을의 속도보다 결코 느리지 않다. 5년 전 환호하던 권력의 자리도 이제는 시들하다 못해 쓸쓸해졌다. 세상의 그 어떤 권력도 한순간의 단풍 같은 것이다. 하지만 여름 벌레가 겨울 얼음을 알지 못하듯 권력을 거머쥐려는 사람은 그것이 덧없이 짧음을 결코 알지 못한다.

단풍은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높으며 수종이 다양할수록 곱게 든다. 일교차가 커지면 낮엔 따뜻하고 일조량이 많아 광합성이 왕성해져 잎에선 당분을 많이 만들지만, 밤이 되어 쌀쌀해지면 줄기의 당분 소모량은 오히려 줄어들어 결국 잎에 당분이 과잉 축적되게 마련이다. 그 과잉된 당분이 잎의 산도를 증가시켜 녹색의 엽록소는 파괴되고 대신 잎 속에 있던 색소가 드러나는 것이 단풍이다. 이때 노란 색소인 카로틴이 드러나면 노란 단풍이 들고 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이 드러나면 빨간 단풍이 드는 것이다. 결국 어찌 보면 단풍은 나무가 당뇨병에 걸린 것과 같다. 단풍이 고울수록 나무는 아픈 것이다. 권력이 제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것은 본질상 아픔인 것처럼 말이다.

대개 단풍은 노란색이나 빨간색 일색이 아니라 울긋불긋 어우러져야 멋이 더해진다. 그러려면 수종, 즉 나무 종류가 많고 다양해서 이것들이 어우러져야 한다. 물론 단색보다 색감의 하모니가 더 아름답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애초부터 가을은 하나의 빛깔이 아니다. 나무만큼, 산만큼, 그리고 사람만큼, 사랑만큼 가을의 빛깔은 다채롭다. 이 단풍 드는 가을을 청와대의 노 대통령도 볼 것이고, 구치소에 갇힌 몸이 된 변양균과 신정아씨도 볼 것이다. 사랑하던 아내 옥소리를 향해 이혼 소장을 낸 박철도 볼 것이며, 멀리 프랑스 엘리제궁의 사르코지 대통령과 그의 이혼한 부인 세실리아도 볼 것이다. 하지만 그 빛깔은 그들 모두에게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저마다의 아픔만큼 가을과 단풍은 다른 빛깔일 테니까.

정신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