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기업 구하기 '外人 CEO' 맹활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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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기업문화가 전혀 다른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들이 위기에 몰린 기업을 살리는 탁월한 소방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외국人 CEO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염두에 둔 기업 경영으로 세계화를 앞당길 수 있고, 복잡하게 얽힌 기업 내부의 이해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이 장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과 일본의 닛산 자동차, 미국 펩시콜라는 각각 미국.브라질.인도 출신의 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영입해 위기에서 탈출한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인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인 톰 글로서(45)는 2001년 7월 로이터통신 CEO에 취임해 바닥으로 치닫던 이 언론사를 2년 만에 회생시켰다.

주력 사업인 금융정보 서비스에서 신생 블룸버그통신에 밀려 2002년 6억3천만달러의 적자를 낸 로이터를 지난해 영업이익 1억9천4백만달러의 흑자 언론사로 되살렸다.

글로서 사장이 로이터를 회생시킨 비결은 취임 당시 1만8천2백명이던 직원 수를 현재 1만5천명, 2006년까지 1만3천명으로 줄이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과 비용 삭감이라고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9일자)가 소개했다. 영업비용을 대폭 줄이면서 매출이 65억달러에서 지난해 58억달러로 약간 줄었지만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는 것이다.

주력사업인 금융정보 단말기 서비스 내용을 투자자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불가리아나 케냐 주식과 같은 1천3백개 종목을 없애는 등 단순화하고, 월 이용료도 경쟁사인 블룸버그보다 1백달러 낮게 책정했다.

또 주식과 금융파생상품 종류별로 월 이용료 2백~9백달러의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서비스 차별화로 블룸버그에 뺏겼던 대형 증권사 등의 고객을 다시 확보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 미국인 변호사는 영국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 출신이 지배하는 1백50년 전통의 언론사 문화도 바꿔놓았다. 너무 많은 인재를 내보낸다는 내부 불만에 대해 글로서 사장은 "키케로를 얘기하는 등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아이디어는 필요없다. 실적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카를로스 곤(50) 닛산 CEO도 혼다.도요타 등과의 경쟁에서 밀려 르노 자동차로 넘어간 닛산 자동차를 맡아 4년 만인 지난해 영업이익률 11%를 내는 우량 기업으로 거듭나게 했다.

지난해 닛산의 순이익은 42억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닛산은 지난달 미국 시장에서 판매가 26% 늘어나는 등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강자로 다시 올라섰다.

곤 사장은 차입경영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닛산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교토 등 5개의 공장을 매각하고, 수천명의 종업원을 해고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회사가 보유한 후지중공업 주식 등 불필요한 자산은 정리해 지난해 '실질차입금 제로'를 달성했다.

또 1천1백45개에 이르던 부품공급업체를 7백개로 줄여 구매비용도 대폭 줄였다.

그의 경영이 성공하자 처음에는 회의적이던 일본 언론들도 "외국인으로서 폐쇄적인 일본 기업문화를 바꾸는 신화를 일궈낸 경영자"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2005년 모기업인 르노 자동차의 CEO를 맡기로 내정된 상태다.

인디라 누이(49) 펩시콜라 사장 겸 CFO도 코카콜라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펩시에 새로운 활로를 만들어 낸 인물이다.

1978년 인도 마드라스 출신의 가난한 유학생으로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던 그는 94년 펩시에 합류해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97년에는 피자헛.KFC 같은 외식사업 부문을 과감히 떨어내 독립시켰다.

이어 퀘이커오츠.트로피카나와 같은 식품회사들을 인수해 스낵사업 부문에 새로 진출했다. 이 같은 M&A의 결과로 펩시는 전체 수입의 3분의 2를 스낵 부문에서 내는 등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다.

이런 성공으로 누이 사장은 칼리 피오리나 휼렛패커드 회장과 함께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으로 미국 재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새로운 기업 인수에 항상 적극적인 그를 두고 타임은 최근 "실패를 두려워 않는 철의 여인"이란 칭호를 붙였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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