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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그림자, 맨홀 아래의 삶 - 청소원 김춘곤 씨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김춘곤 씨(43)가 거리 청소를 업으로 삼은지도 벌써 15년 째. 청소일의 밑바닥부터 시작해 지금은 자그마한 청소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도시에서 가장 덜 빛나는 곳에서 자신의 삶을 빛낸다. 환경미화원들도 손쓰기 힘든 높은 가로등이나 찌든 때로 더러워진 버스정류장이 그의 일터다. 그를 지켜온 철학은 ‘직업에 귀천 없다’는 것. 하지만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최근 들어 도시를 빛내온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다음은 그가 들려주는 도시의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은 점점 더 발전하고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이 청소꺼리는 더 늘어갑니다. 물론 할 일이 늘면 그만큼 즐겁게 일을 해야 하는 게 당연자사지요. 하지만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한숨이 나는 것도 사실이에요. 예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거든요.
번화가를 누비는 사람들을 좀 보세요. 하나같이 다들 멋있고 건강해보이잖아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이 거리도 그런 줄 아시면 그건 정말 뭣 모르는 소리예요. 아무데나 뚜껑 열고 지하로 한번 내려가 보세요. 정말 그렇게 역겨울 수가 없어요. 물이 더러운 건 그렇다 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쓰레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대체 어떻게 그런 쓰레기들이 나올 수 있는 건지….맨홀 바닥에 뭐가 있는지 한번 들어 보겠소? 뚜껑 열고 들어가면 그 바닥에 인분이 널려 있는 건 기본이에요. 그보다 더한 오물들이 10년 이상씩 썩고 있기도 하고.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어요. 번화가의 맨홀은 화장실 정화조보다 더 더러워요. 특히 쇼핑지대가 몰려있는 지하상가의 맨홀청소는 가장 더럽고, 가장 위험합니다. 우선 오물들을 삽으로 열심히 퍼서 통에다 담아야 해요. 그걸 또 지상으로 끌어 올려 마대 자루에 담죠. 그리고 다시 비닐 봉투에 담아 지하 3층서 등에 메고 지그재그 계단으로 해서 지상까지 가지고 올라가야 되는 겁니다.


지하로 들어가면 숨이 턱턱 막히는데 환풍기를 한참 돌린 다음에 들어가도 힘든 건 마찬가지에요. 한 번만 숨을 들이마셔도 속이 쓰리는 유독가스의 위력은 직접 체험을 해보지 않으면 아무도 상상을 못해요. 처음에는 다들 방독면을 착용하고 들어가긴 해요. 하지만 30분 정도 일하면 눈에 땀이 들어가고 숨도 가쁘죠. 있으나 마나에요. 작업 도중에 정신이 몽롱하고 비틀거리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는 잽싸게 다른 사람이 교대를 하죠. 30분마다 작업자들을 맞교대해 가면서 안간힘을 다해 오물들을 퍼 올립니다. 등짐지어 나르다가 그게 터지기라도 하면 등줄기를 타고 오물과 우수가 흘러내리죠.
얼마 전에도 맨홀 작업을 하다가 2명이 질식사 했다는 뉴스가 나왔잖아요? 지상의 맨홀을 청소하다가도 사람이 죽는데 지하는 오죽하겠어요. 당연히 일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거세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아우성이 도시의 비명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아요.
청소! 그놈의 청소! ‘15년씩이나 했으면 이제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닌가? 이제는 다른 일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합니다. 그런데 또 얄궂게도 ‘나 아니면 또 누가 이 일을 할까?’ 싶은 마음이 들어요. 당장 몸 망가지는 건 둘째 치고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들 있으니까 묵묵히 이 일을 하는 직원들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요.
이 사회가 그나마 좀 그럴듯하게 돌아가려면 누군가는 이 일은 해야만 하잖아요? 그러고 보면 우리 직원들 참 용해요. 봉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 누구 한 사람 고맙다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 일이 가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바라는 건 딱 하나 밖에 없어요. 제발 길 좀 깨끗하게 씁시다! 별 생각 없이 아무데나 버린 쓰레기들은 결국 바람에 날리고 물에 휩쓸리면서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썩어갑니다. 그 썩어가는 모습이 지금 우리네 사는 모습이라는 걸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길 위로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아무리 높게 솟으면 뭐합니까. 아래로는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요.”

객원기자 설은영 skr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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