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공동기지 건설 때까지는 러·미, MD 공동운영 힘들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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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과 러시아의 외교.안보 갈등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12~13일(현지시간) 러시아를 찾아 대화를 했음에도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기지 건설, 이란 핵 문제 등을 둘러싸고 증폭돼 온 양국의 긴장관계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날 크렘린을 찾은 두 장관에게 '미국이 동유럽 MD 기지 건설 계획을 포기하든지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각오하든지 양자 택일하라'는 식의 경고성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란과 북한 등 '불량국가'의 공격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폴란드에 요격 미사일, 체코에 레이더 기지를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이 같은 계획이 자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라이스와 게이츠 장관은 푸틴과의 면담에서 러시아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MD 기지 내에 러시아 인력을 배치하고 러시아의 기지 감시를 허용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 미.러 양국이 언젠가 달에 MD 시스템을 함께 건설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MD 공동 운영에 관한) 합의를 이루기는 힘들 것"이라며 미국의 제안을 일축했다.

푸틴 대통령은 나아가 "미국과 옛 소련이 맺은 중거리 핵미사일 감축 협정(INF)을 폐기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INF는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사거리 1000~5000㎞의 중거리와 500~1000㎞의 단거리 핵미사일을 생산하거나 배치하지 않기로 합의한 협정이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이 MD 기지 건설을 밀어붙일 경우 러시아도 핵미사일 생산 확대에 나서겠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핵 개발을 강행하고 있는 이란에 대한 제재 문제에서도 양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라이스 장관이 이미 취해진 유엔 제재보다 더 강력한 제재를 주문했지만 러시아 측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일방적인 제재 방침은 이란 핵 프로그램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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