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행복지수 높이기] 4. 함께 이기는 시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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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성격차이.질병.경제적 어려움 등. 결혼 생활 곳곳에 어려움과 갈등은 암초처럼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이를 무조건 피할 수도, 번번이 걸려 넘어질 수도 없다. 가족이 함께 이겨나가며 행복과 평화를 찾을 수는 없을까.

그 비법을 알아보기 위해 경북 구미의 호민이(14)집을 찾았다. 호민이 엄마 채영숙(38)씨는 자폐아인 호민이를 키우면서 겪은 희노애락을 지난해 4월부터 인터넷 '다음 칼럼'에 올려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최근 채씨는 이를 보충해 단행본 '아들의 답장을 기다리며'(좋은책刊)를 펴냈다.

"어렵고 힘든 고비를 넘기니 좋은 날이 오네요." 채씨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아니라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힘이 생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고비마다 포기하거나 버린다면 어떤 가정이든 열두번도 더 깨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채씨가 겪은 가장 큰 고비는 뭐니뭐니 해도 호민이의 '장애'다. 첫 아이를 사산한 뒤 얻은 호민이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눈을 잘 맞추지 않는 등 어려서부터 자폐 증상을 나타냈다. 내성적인 성격 탓이려니 했다. 하지만 호민이는 30개월이 됐을 때 대학병원에서 '자폐' 진단을 받았다. 그 후 남편 변남현(40.운수업)씨는 술을 마셔댔다. 술에 취해 채씨와 호민이를 앉혀놓고 신세한탄을 하며 소리내 울기도 했다.

혼자 아이를 데리고 조기치료실에도 가고 부모교육도 받아야 했던 채씨는 "그때는 사는 게 절벽을 타는 일 같았다"고 회상했다. 아이의 장래가 막막해 "차라리 이 아이를 데려가 달라"고 기도할 정도로 실의에 빠져 살았다.

이들 부부가 마음을 추스른 것은 또 한번의 시련을 겪고 난 뒤였다. 호민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채씨는 임신을

했다. 호민이의 교육비 등 경제적 여건을 고려하면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새 생명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다. 임신해서도 호민이를 업고 조기치료실을 다녔던 채씨는 임신중독이 심해 임신 8개월에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아야 했다. 하지만 미숙아로 태어난 셋째는 결국 20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채씨가 입원해 있는 3주 동안 변씨는 평소 무뚝뚝하던 '경상도 남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매일 병실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며 채씨 수발을 들었다. 채씨가 퇴원하던 날 "마누라가 살았다"며 기뻐했던 변씨는 곧바로 병원을 찾아가 불임수술을 받았다. "왜 상의도 없이 그랬느냐"며 펄펄 뛰는 채씨에게 변씨는 "당신은 할 만큼 했으니 혹 자식 문제로 죄책감 같은 것 갖지 말라"고 못박았다. 채씨는 "그때 남편 마음속에 내가 얼마나 크게 들어있는지 알았다"고 말했다.

그 후 두 사람은 힘을 합해 호민이 키우는 데 매달렸다. 호민이는 일반 유치원을 거쳐 일반 초등학교에 진학해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특수반도 갖춰져있지 않은 학교에 보내는 동안 매년 "특수학교로 전학보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듣지만 채씨 부부는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교육받고 생활해야 한다는 편견의 담은 반드시 허물어야 한다"고 뜻을 세웠다.

호민이는 통합교육 덕에 문구점이나 수퍼마켓에서 간단한 쇼핑을 하고 전시회에서는 줄을 따라 질서있게 작품을 감상할 정도로 사회성이 길러졌다. 변씨는 "모두 아내의 수고와 이해 덕"이라고 공을 돌렸지만, 채씨는 "책임감과 신뢰"라고 그 비법을 꼽았다. 채씨는 "'남편이나 나나 모두 내 가족은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시련을 견딜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구미=이지영 기자<jylee@joongna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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