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5 섹시세대] 조소영의 커피·와인 편력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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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커피메이커 뚜껑을 열어 생수를 붓는다. 그저께 새로 갈아온 커피 원두 향이 코끝에 걸린다. 스물일곱의 CEO, 밤낮으로 이어지는 업무에 건강이라도 챙겨보려고 억지로 먹은 아침밥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한 모금의 커피가 한 시간 전부터 속을 괴롭히고 있던 음식을 스르륵 소화시키는 느낌. 이래서 모닝 커피가 좋다.

2. 일산에서 진행 중인 인테리어 공사 현장으로 가는 길, 선릉역 스타벅스 앞에서 잠깐 차를 세웠다. 은은한 노랑 조명과 잔잔히 흐르는 재즈 선율, 점심 전이라 그런지 실내가 한적하다. 손님이라고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잡지를 뒤적이는 노신사가 전부. 평소에는 커피빈에서 시고 깔끔한 ‘오늘의 커피’를 마시지만 오늘처럼 바람이 쌀쌀한 날에는 스타벅스에서 카페라떼를 마시게 된다. 부드러운 우유 거품에서 느껴지는 깊은 단맛이 좋다. 스타벅스는 커피 자체는 그저 그렇지만, 우유를 끓여서 거품을 내는 데는 정말 전 지점 바리스타들이 하나같이 다 최고다.

3. 두껍고 단단한 하드 커버의 새하얀 종이컵. 컵 색깔에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빨대와 황토빛 골판지 컵홀더. 주문하자마자 ‘치익’하는 소리를 내며 우유를 끓여내는 스팀기의 소리. 바리스타의 진지하고도 정성스런 눈빛과 지그시 다문 입술. 주문한 커피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과 분위기도 내게는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그 행위에 포함된다. 그래서 더 맛있다.

4. 오후 7시. 겨우 일을 끝내고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을 위해 압구정으로 차를 몰았다. 오늘 약속 장소는 도산공원 뒤에 있는 ‘젠 하이드 어웨이’. ‘ZEN’은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히 생각한다는 의미, 복잡한 생활 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을 때 친한 여자친구들과 종종 들르는 ‘아시안 다이닝 바’다. 작은 정원에는 진짜 새들이 날고 있고, 꽃이 핀 조그만 연못도 있어 시골의 어느 리조트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라 가볍게 와인을 마실 때 좋다.

5. 친구들이 내게 와인 리스트를 주길래 이탈리아의 레드 스파클링 와인 반피를 주문했다. 업무상 만난 자리에서는 주로 레드를 마시지만 여자친구들과 함께 하는 편하고 가벼운 자리엔 역시 스파클링 와인이 어울린다. 가격도 바에서 4만~5만원이면 마실 수 있어 여럿이 나눠 계산할 땐 부담이 없다. 특별한 날엔 거품이 우아한 모에샹동(소매가 4만~5만원대)을, 평소에는 저렴하고 달콤한 베린저 화이트 진판델(소매가 1만원대)을 마신다. 와인으로 시작하는 모임은 술을 위한 술자리가 아니어서 좋다. 좋은 친구와 즐거운 대화를 나눌 땐 와인은 100점짜리 기폭제다.

6. 난 와인을 잘 모른다. 커피 역시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좋아하고 즐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온전한 행복을 위해 그 값을 치르고 커피를 마시고 와인을 즐긴다. 누구에게나 돈을 충분히 투자해서라도 제대로 즐기고 싶은 분야가 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동차가 그렇고, 어떤 이에게는 컴퓨터가 그렇다. 내겐 커피와 와인이 그 대상이다. 한잔을 마셔도 정말 맛있는 커피와 와인을 마시고 싶은 마음은 오늘도 마찬가지다.

인테리어그룹 (dgspace.co.kr) 조소영 대표, 정리=이여영 기자

[2635 ‘섹시’ 세대]

(서론) 2635 소비와 문화 코드를 푸는 비밀의 숫자

- ① 왜 소개팅에서는 좋은 남자를 만날수 없을까? - 박지영의 소개팅 일기

②미니홈피와 블로그에 미치다. 자기 노출의 심리학
- 강한나, 당당하게 세상에 얼굴을 내밀다

누가 우리를 된장녀라 부르는가
- 조소영의 커피?와인 편력기

④칙릿(chic lit.)에 열광하고 일본 소설에 빠지다
- 감수성을 자극받기 위한 이 세대의 독서법

⑤세 끼 때운다고? 한 끼라도 맛있게, 열량을 채운다
- 김치 대신 파스타. 아침 대신 브런치. 변화하는 식생활 습관

⑥ 김희선보다는 한예슬을 좋아하는 새로운 미의 기준
- 이 세대는 얼굴보다는 길이와 스타일을 중시한다.

⑦ 명품에 목숨 걸지 마라!
- 명품과 동대문제가 공존하는 이 세대의 소비와 스타일링 패턴

⑧ 당당히 성형 하고, 목숨 걸고 다이어트 한다
- 성형과 다이어트에 대한 이 세대의 열정을 이해할 세대는 없다.

⑨누가 패리스 힐튼에 돌을 던지랴?
- 패리스 힐튼은 망나니짓의 대명사. 그러나 이 세대는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⑩ 화려한 업종을 쫓아 불나방처럼 몰려든다
- 남들의 주목을 받는 화려한 미디어나 커뮤니케이션 업계가 이 세대, 꿈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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