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연출노트>윤석화 데뷔 연기도중 웃는 실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국내외 어디든 유명 관광지엘 가보면 권태로운 표정의 現地人들을 꼭 보게 된다.이런 絶景에 살면서 어쩌면 그렇게 무감동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내 친구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날 부러워하며『너 좋은 일 하며 사니까 얼마나 좋으냐』고 야단이다.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하는 이유 가운데 빠지지 않는 항목이 하나 있다.미모의 젊은여배우들 틈에서 생활한다는 것이다.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그런데 그게「좋은」일인가는 분명치 않다.왜냐하면 미모의 젊은 여성과 같이 즐기는 것과 그들과 함께「일」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초창기에「꿀맛」이라는 연극을 연출할때 지금은 연극계의스타가 되어있는 윤석화씨와 요즘은 TV에서 주책없이 배역을 자주 맡는 김애경씨와 같이 「일」한 적이 있었다.그것이 윤씨의 데뷔무대였는데 당시 스물을 갓 넘은 윤씨는 결코 요즘처럼 의젓한 데라곤 한군데도 없던 시절이다.연극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때 김씨의 딸役을 연기하던 윤씨는 자기 대사에 자기가 우스워서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그래 도 선배랍시 고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 던 김씨마저 웃고 말았 다.드디어는 관객까지 합세해서 장내는 5분가량 웃음바다가 되었다.
객석에 앉아있던 연출자인 나의 분노를 상상해주기 바란다.그러나 분통만 터질뿐 속수무책일수 밖에.마침내 윤씨가 웃음을 그치고 관객에게 허리굽혀 사과한 뒤 연극은 계속되었다.물론 나의 분노는 삭지 않았다.무대뒤로 가서 커튼콜이 끝나고 나오는 순간온힘을 다해서 따귀를 때리기로 일단 작정했다.
그런데 결과는? 난 따귀 대신에 윤씨를 포옹하고 말았다.비록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있었으나 그뒤의 연기는 감동적이었다.비단여배우 뿐 아니라 자기가 맡은 일을 잘해낼 때 그 인간은 아름답다.일을 떠나서 인간은 대체로 피곤하다.특히 여배우는.따라서여배우가 무대위에서 일하는 모습만을 보게되는 관객이야말로 축복받은 존재인 것이다.
〈연출가.성균관대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