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뷰] 가로수 냄새도 도시 경쟁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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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요즈음 서울 도심이나 남산 등 도시 곳곳에 잘 익은 은행나무 열매들이 떨어져 뒹굴고 있다. 예년에 비해 올해는 단풍이 늦게 드는 편이지만 머지않아 은행나무 가로수가 많은 서울 거리는 노란 빛으로 물들게 될 것이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흔한 가로수가 은행나무다. 가로수의 약 39%가 은행나무다. 많다고는 하나 플라타너스의 비중도 25%밖에 되지 않는다. 은행나무는 오래 살고, 공해에도 강하며, 열매도 약제로 쓰일 정도로 유익한 나무다. 노란색의 단풍도 색채가 아름다워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 받는 나무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그 냄새다. 열매가 열렸다 떨어지는 10월 한 달 동안 도심에서 은행 냄새가 진동한다. 가을에 서울을 찾은 많은 외국 관광객은 이게 무슨 냄새냐고 묻곤 한다. 은행 냄새라는 것을 모르는 외국인은 이 역겨운 냄새를 서울의 냄새라고 여기는 경우도 흔하다.

세계 각 도시는 특유의 모습이나 색채와 더불어 고유한 냄새가 있다. 이 냄새는 공해의 정도, 해당 지역의 음식 등으로 결정된다. 그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가로수 냄새다. 나무도 꽃처럼 수종에 따라 각기 고유한 향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로수의 역할은 그늘 제공뿐 아니라 소음 흡수, 시각적 차단을 통한 심리적 안정 효과, 먼지 등 공해 제거, 인공적인 도시에 자연 친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 워싱턴 DC의 벚꽃 가로수는 봄철 관광객을 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고 파리의 마로니에가 도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등 가로수가 도시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다.

도시의 가로수를 선정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다양하다. 도로의 폭에 따라 나무가 자랐을 때의 크기·형태 등이 달라져야 하고, 나무가 자라는 속도도 가로수 선정에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신도시를 조성했을 때 느리게 자라는 가로수를 심으면 도시가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빨리 자라는 수종을 택하기도 한다. 교외의 도로에 심을 나무와 공해가 집중된 도심에 심을 가로수는 수종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 가로수로 상록수를 별로 쓰지 않는 것은 겨울에 거리에 햇볕이 들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무의 향기나 그 열매로 인한 냄새도 중요한 고려 요소 가운데 하나가 돼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저 가로수는 값싸고 잘 자라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도시들의 가로수는 기껏해야 플라타너스·은행나무·은사시나무·포플러·버드나무·벗나무 정도다. 다른 수종은 찾아 보기 어렵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 보면 튤립나무·메타세콰이어·단풍나무·느티나무 등 우리 환경에서 선택 가능한 가로수 수종의 폭은 꽤 넓다.

최근 도시 경쟁력이 전 세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그래서 건축물의 디자인, 거리의 공공디자인 등 도시 디자인이 도시 경쟁력의 주요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가로수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도시 디자인의 아주 중요한 요소일 뿐 아니라 보행자에게 가장 가까이 느껴지는 게 가로수인데도 그렇다. 아직은 그저 가로수가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때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같은 가사의 대중가요가 유행한 적도 있다.

잘 자라고 공해에 강하며 도로 크기에도 맞는 수종을 선택하는 건 기본이다. 여기에 단풍이 들었을 때의 색채가 도시 전체의 색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열매나 나무의 냄새가 도시 전체에 어떤 향기를 가지게 할 수 있는지까지 고려해 보면 어떨까. 그 가로수를 서울의 상징으로 삼아 서울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한몫하게 하면 어떨까 싶다.

신혜경 전문위원 겸 논설위원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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