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카드를 묻어두는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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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分斷 50년만에 南北 頂上의 만남인데 사흘은 너무 짧다.먼저 사흘 정도는 민족의 비극을 함께 통곡부터 하고 그다음 모든문제를 다 논의해야 한다.』 『北은 그냥 둬도 자체 붕괴가 시간문제인데 굳이 頂上회담을 할 필요가 있는가.우리 대통령이 金日成과 악수하고 웃고 德談을 나누는 장면이 신문.TV로 쏟아지면 국내 主思派나 親北派를 무슨 논리로 단속하겠는가.』 분단 半세기만의 南北頂上회담을 앞두고 우리사회 내부에는 기대와 낙관,경계와 懷疑가 엇갈리는 가운데 온갖 예상과 추측이 들끓고 있다.불과 한달 전에 정부가 국민의 안보不感症을 걱정하고 일부에서 사재기소동까지 일었는데 지금 통일의 희 망과 失鄕民의 꿈이논의되고 있으니 冷溫湯도 이런 급격한 冷溫湯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이제 회담의 세부사항까지 합의된 마당에 頂上회담 자체를 못마땅하게 보는 것은 온당하지도,현실적이지도 않다.오히려이를 50년만에 온 크나큰「기회」로 알고 성공적 頂上회담으로 이끄는 조건이 뭔지를 숙고하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할 일이다.
생각해보면 北이 지난 1년여 超강대국 美國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강경-온건을 왔다갔다하는 반복 무쌍한 核게임을 벌일 수 있었던 큰 밑천의 하나는 바로「模糊性」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핵무기가 있는지 없는지,끝내 핵무기를 가질 작정인지 협상用인지 北의 實相과 眞意는 항상 모호했다.협상으로 나올 때도 정말협상으로 결말을 보자는 것인지 시간벌기用인지 의심스러웠고,강경으로 나올 때도 정말 전쟁까지 각오하는건지 엄포 用인지 해석이엇갈렸다.지금까지 그런 모호성으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이다.
南北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北은 대화와 단절을 반복하면서 대화를 하면서도 땅굴을 판다든가,非核化 공동선언을 하는 뒤편으로 핵무기 개발에 열중해왔다.이번에도 金주석이 2차로 서울에 올지 안올지 알 수 없게 돼있다.
반면 우리쪽의 입장은 줄곧 솔직하고 명백했다고 할 수 있다.
역대 대통령마다 頂上회담을 제의했고,정치지도자들은 앞다퉈 訪北을 희망했으며,기업은 기업대로 北韓진출에 경쟁을 벌였다.
이런 우리쪽의 일관된 對北염원(?)은 어느덧 알게 모르게 北에 선택.결정권을 쥐어주게 됨으로써 對北교섭 여건의 不利를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頂上회담이나 대화 여부의 칼자루는 北이 쥔것처럼 보이고,많은 訪北희망자 가운데 北이 원하 는 사람이나 기업만이 訪北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南北관계의 局面 장악력이 어느덧 北측에 많이 기울어지는 구조가 된 것이다.
한달 전의 차갑던 冷湯이 지금 뜨끈뜨끈한 溫湯이 된 것도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頂上회담이 합의되자 온갖 얘기가 다 나오고 있다.당장 核-經協분리론이 나오고,輕水爐지원론.고향방문.금강산 개발론등이 쏟아지고 있다.北의 眞意는 아직도 모호한데 이쪽의 의도는 불쑥불쑥나오고,떡도 먹기 전에 김칫국부터 먹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따지고 보면 경수로 지원이나 經協 같은 것은 활용하기에 따라이쪽의 중요한 카드인데 활용하기도 전에 다 까보이고 있는 셈이랄까. 訪北대표단.기자단 문제를 논의한 실무접촉에서도 우리측이먼저 案을 내고 北측이 이를 받아들였다.대표단의 구성이나 보도문제로 北측의 생각은 뭔지 意中을 떠볼 법도 했으련만 가급적 많은 사람이 자동차로 가고 싶다는 우리쪽의 생각은 족 촉 전에이미 알려졌다.
南北 頂上회담을 물론 勝敗主義로 봐서는 안된다.그러나 北은 효과적으로 모호성을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속을 다 보여서야 협상이 제대로 될 수 있을까.
***속깊은 대비책 필요 결국 우리도 좀더「속이 깊은」대처가필요하다.意中을 깊숙이 묻어두고 상대방 카드에 따라 우리도 하나씩 카드를 꺼내는 속깊은 자세,다음 카드를 상대가 쉽게 눈치챌 수 없게 하는 중후한 자세가 돼야 한다.
世間에는 平壤의 金-金대좌가 氣와 氣의 대결이니 순발력이 중요하다느니 하는 말도 있지만 결국 협상력은 카드에 달려있고, 카드를 얼마나 깊숙이 감추고 조직적으로 적절히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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