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 "환자도 아닌데 집에서 뻗칠 필요 없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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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선물한 통영나전칠기 12장생도 병풍을 만져보고 있다. [평양=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 방문 이틀째인 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회담에는 공동취재단의 취재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회담 현장에 있었던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의 전언을 토대로 두 정상의 대화록 일부를 재구성했다. 다음은 시간대 별 대화록.(※는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편집자 주)

◆영빈관 입구(※노 대통령은 예정보다 30분 앞당겨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한 김 위원장을 영접함)

▶김 위원장=잘 주무셨습니까.

▶노 대통령=잘 잤습니다. 숙소가 아주 훌륭합니다.

▶김 위원장=이 숙소에서 김대중 대통령도 주무셨습니다.

◆영빈관 내

▶김 위원장=큰물 때문에 정상회담을 연기하게 되어….

▶노 대통령=차를 타고 올라오다 보니 말끔하게 정리돼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그래도 노면이 좋지 않아 불편했을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눈에 띄게 밝은 표정을 지었다. 2일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두 정상은 영빈관 내 벽에 걸린 대형 그림 앞으로 이동해 기념촬영을 할 때 서로 가운데 자리를 양보하다가 한 번씩 가운데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두 정상은 기념촬영에 이어 노 대통령이 준비해온 선물을 전시한 장소로 이동했다.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으로부터 선물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감사합니다"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오전 1차 정상회담

TV 화면을 통해 공개된 회담 시작 장면에서도 김 위원장의 부드러운 모습은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특유의 입담으로 국제사회 일각에서 제기됐던 건강이상설을 일축했다.

▶김 위원장=김대중 대통령은 하늘로 오셨는데, 대통령께서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육로로 오셔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노 대통령=제 스스로 넘으면서 감동을 느꼈습니다. 도로 정비가 잘 되어서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노 대통령=어제 평양에 도착했을 때 평양 시민들이 나와서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아주 성대히 맞아주셔서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특히 위원장께서 직접 나오셨었죠. 감사합니다.

▶김 위원장=대통령께서 오셨는데 내가 환자도 아닌데, 집에서 뻗치고 있을 필요 없지요.(※김 위원장은 2000년 정상회담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구라파 사람들이 나를 은둔생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말했다. 서방세계에서 형성된 자신에 대한 은둔 이미지를 벗어나는 효과를 거두었다.)

◆오후 영접

남측은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오전과 마찬가지로 현관 앞에서 영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북측은 "장군님께서는 무례하게 대통령님을 여러 차례 멀리까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두 번째 영접 위치는 회담장 앞 복도로 결정됐다.

▶김 위원장=(복도를 걸어들어와 악수를 하면서) 좀 쉬셨습니까.

▶노 대통령=네.

▶김 위원장=점심도 맛있게 드셨습니까.

▶노 대통령=맛있게 먹었습니다.

▶김 위원장=옥류관에서 국수를 드셨다면서요. 평양 국수와 서울 국수 어떤 게 맛있습니까.

▶노 대통령=평양국수 맛이 진한 것 같더군요.

평양 공동취재단, 이철희 기자

☞◆건강 이상설=김정일 위원장이 2000년 정상회담 때 TV에 비친 모습을 보고 국내외에선 복부 비만에 따른 당뇨.고혈압.고지혈증 가능성이 계속 거론됐다. 미국에서도 그해 11월 '신장.간이 안 좋고, 당뇨를 앓고 있어 건강이 악화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올 초부턴 해외 언론들이 김 위원장이 심근경색.동맥폐색증 같은 중병을 앓고 있다며 건강 이상설을 집중 보도했다. 그 근거로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 횟수가 줄어든 사실이 제시됐다. 그러나 2~3일 김 위원장은 나이가 더 들어 흰 머리가 많아지고 머리숱이 줄었지만 여전히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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